일요한담

[일요한담] 성모님의 손(6) / 한경옥

한경옥 마르가리타(시인)
입력일 2022-10-04 수정일 2022-10-04 발행일 2022-10-09 제 331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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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노인대학에서 봉사할 때 내 학력은 고졸이었다. 아무도 묻지 않는데 학력 콤플렉스는 여러모로 나를 주눅 들게 했다. 학교에 가정환경조사서를 제출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노인대학 일을 할 때나 동화 구연 강사로 활동할 때도 속으로 많이 위축됐다. 보수를 받을 때는 물론이고 열심히 연습해서 무료로 봉사를 하면서도 늘 당당하지 못했다.

나는 쉰한 살에 용기를 내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동화 구연 하던 경험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봉사를 졸업 후까지 했다. 적은 액수지만 장학금도 몇 번 받았다. 3학년 때 현대시론(詩論)을 수강하면서 시에 매료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평소 존경하던 원로시인의 특강을 들은 후, 시인이 돼야겠다는 꿈이 확고해졌다. 나는 57세에 등단하여 그 꿈을 이뤘다.

4학년 2학기 초에 남편에게 골프용품 일체를 선물 받았다. 늦은 나이에 공부하느라 고생했으니 졸업 후에는 골프나 치면서 노후를 즐기란다. 그런 남편에게 ‘기왕 시작했으니 석사까지 하고 싶다. 예술대학원에 가고 싶은데 5학기 등록금과 교재비, 품위유지비까지 40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 그동안 오롯이 가족들 뒷바라지를 했으니 나 그 정도는 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골프용품 반품하고 대학원에 보내 달라’고 했다. 남편이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아이들은 박수까지 치면서 응원해줬다.

쉰다섯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가정주부가 뭐하려고 그런 짓을 하냐고 비웃는 친구들도 있었다. 면접시험 날은 대기실에 들어가니 먼저 와있던 수험생들이 내가 교수인 줄 알고 벌떡 일어나 인사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교수님께서 면접 말미에 “나이도 있으신데 여행이나 다니면서 편히 사시지 왜 어려운 공부를 시작하시냐?”고 물으셨다. 나는 “교수님 말씀대로 제 나이가 많습니다. 지금도 많이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이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제 간절한 바람입니다. 합격 시켜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고 했다.

시험결과 발표까지의 한 달 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애가 바짝바짝 탔다. 합격을 확인한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남편에게 전화로 소식을 전하면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입학하고 보니 학교 내에서 내가 최고령자였다.

나는 교수님들과의 약속대로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 언제나 수업 10분 전에 강의실에 들어갔고 결석도 하지 않았다. 과제는 항상 첫 날 제출하고 발표도 빠지지 않고 했다. 학교 축제 때는 맨 앞줄에 서서 ‘롤리폴리’ 춤을 20~30대 젊은 친구들과 똑같이 췄다. 내가 잘 해야 다음에 나이 많은 사람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 성실하게 했다. 덕분에 젊은 학우들을 제치고 수석장학금을 두 번이나 받았다.

쉰여덟 살에 나는 논문 「詩의 음악콘텐츠 활용사례 고찰 -노랫말로 활용된 시를 중심으로-」를 써서 당당히 문화콘텐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길고 긴 학력 콤플렉스의 터널에서 빠져나온 순간이었다. 유난히 빛나던 2월의 햇살에 눈이 부셨다.

성당에서 노인대학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나이에 대학에 갈 엄두를 낼 수 있었을까? 아마 시인이 되겠다는 꿈같은 건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이로써 나는 성모님께서 계획하신 큰 기적을 직접 선물로 받았다.

한경옥 마르가리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