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제26회 한국가톨릭학술상] 본상- 교부들의 성경주해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2-10-04 수정일 2022-10-04 발행일 2022-10-09 제 3313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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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간 번역한 29권의 역작… 국내 교부 연구 기틀 세웠다
2005년 출간 결정하고
2022년 5월 전체 작업 마무리
구약 15권·신약 14권 구성

성경 묵상한 교부들의 토막글
신학적 검토·교정 거쳐 엮은 것
그리스도교 일치에도 큰 도움

지난 5월 6일 「교부들의 성경 주해」 총서 완간 기념식을 마치고 하성수 선임연구원, 이혜정 선생, 박현동 아빠스, 노성기 신부, 최원오 교수(왼쪽부터)가 「교부들의 성경 주해」 전권을 펼쳐보이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교부들의 성경주해」는 미국의 드류 대학교가 1994년부터 2010년까지 총 29권을 출간하기로 계획한 대규모 총서인 「Ancient Christian Commentary on Scripture」 전체를 한국어로 번역한 역작이다.

연구회는 2005년 1월 17일 정기총회에서 분도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총서를 번역, 출간하기로 결정했다. 2008년 4월 「교부들의 성경주해 구약 Ⅰ, 창세기 1-11장」을 시작으로 지난 4월 「교부들의 성경주해. 구약성경 Ⅺ. 이사야서 40-60장」까지 구약성경 주해 15권, 신약성경 주해 14권 총 29권으로 구성된 전체 시리즈가 발간됐다. 번역에 착수한 지 꼬박 17년 걸린 셈이다. 20명이 넘는 연구위원과 전문가들이 번역과 교정에 착수한 대작업이다.

그 시작점에 연구회 초대 회장이자 국내에 교부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문헌을 번역해 온 교부학 1세대 고(故) 이형우(시몬베드로) 아빠스가 있다. 총서 출판을 추진하면서 연구회 회원들에게 편지를 보낸 이 아빠스는 “이 프로젝트는 한국 그리스도교의 일치, 성직자들의 설교·강론, 교부들의 성경 해석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신학 모든 분야의 기초를 놓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작업은 생각만큼 순탄치 않았다. 시작 당시 5년 안에 모두 출간할 목표를 세웠지만, 맥락 없는 토막글을 번역하고 다듬는 일은 예상보다 어려웠고 막대한 번역비와 출판 경비 등을 안정적으로 마련하는 일도 큰 숙제였다. 장인산 신부는 “결국 애초 계획보다 3배가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많은 분의 노고와 헌신 덕분에 총서를 완성하게 됐다”며 후원자와 번역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교부들은 교회 전통에서 특유한 지위를 인정받은 증인이다. 이들의 가르침은 모든 시대에 적용될 수 있기에 교부 연구는 현대 교회의 영성과 사목, 전례, 교회 일치, 선교에 진정한 양식이며 확실한 원천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교부들의 글은 신학자들의 전유물이라 여기며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이에 연구회는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총서의 윤문 기준으로 세우고 작업했다.

총서는 다양한 교부들의 토막글로 엮어져 있다. 전체 맥락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번역하기 어려운 대목들도 적지 않았지만, 다양한 현대어 역량을 갖춘 연구원들의 치밀한 신학적 검토와 교정 덕분에 완성도 높은 책으로 출간됐다.

이로써 총서는 평신도들의 성경 묵상과 성경 공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성수(시몬) 선임연구원은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교부들은 성경을 우의적으로 해석했다고 여기지만, 이 총서에서 우의적 해석은 5%도 안 된다”며 “대부분 내용은 교부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곧 교부들은 성경에서 지식을 얻으려 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을 만나고자 했다. 총서는 초기 교회 스승들의 이러한 풍부한 지혜와 영성을 접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연구회 총무 노성기(루포) 신부는 “교부들의 작품을 가까이 한다면, 영성 생활과 전례 생활에도 크게 도움이 되고 영적 보화와 순수성을 지닌 교부들의 근본 사상을 익힐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성직자의 강론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동안 강론 자료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성직자들의 목마름을 해소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이전까지 쉽게 이용할 수 없었던 교부 문헌을 통해 대학에서 가르치는 성서학, 해석학, 교회사, 역사신학, 설교학을 비롯한 여러 교과 과정에 널리 활용될 전망이다.

교회가 갈라지기 이전, 교부들의 지혜와 사상을 담고 있어 가톨릭뿐 아니라 정교회, 개신교와의 그리스도교 일치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연구회가 중요하게 삼은 점도 교파를 초월한 그리스도교 일치 정신이었다. 처음 번역을 시작하면서 총서 편집진을 성서학계와 교부학계에서 저명하고 성서 주석사에도 조예가 깊은, 그리스도교 각 교파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학자들로 구성한 바 있다.

장 신부는 “교부 문헌은 교파를 뛰어넘어 모든 그리스도인이 물려받은 그리스도교의 소중한 공동 유산이며, 교부들 문헌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갈 때 교회 쇄신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총서는 본지와의 인연도 깊다. 연구회는 교부학 핵심 인물과 주제를 간추려 2002년 1년간 본지에 연재, 이를 묶어 한국적 교부학 입문서인 「내가 사랑한 교부들」(분도출판사, 2005)을 발간했다. 또 「교부들의 성경주해」를 독자들이 미리 맛볼 수 있도록 2009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본지에 고정 연재한 바 있다.

■ 한국교부학연구회는…

연구회는 교부학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교부들의 가르침을 한국교회에 소개하고자 이형우 아빠스를 회장으로 2002년 1월 17일 설립됐다.

설립 초기 정양모(바오로) 신부, 서공석(요한 세례자) 신부, 함세웅(아우구스티노) 신부, 정영한(루도비코) 신부, 성염(요한 보스코)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등 한국교회 교부학 1세대들이 연구회를 이끌며 기틀을 다졌다.

매년 정기 모임과 학술발표회를 열고 있으며, 2005년 교부학 회원들이 쉽게 풀어 쓴 교부학 입문서 「내가 사랑한 교부들」을 출간했다.

또한 그리스도교 신학만이 아니라 철학, 서양사, 서양 문학 등 서양 학문의 공통된 문제인 인명·지명 통일안을 마련하고자 2008년 「교부학 인명·지명 용례집」을 출간했다.

제18차 모임에서는 회원들이 10여 년간 준비한 교부들의 저서명 표기 방식 통일안 「교부 문헌 용례집」을 최종적으로 확정, 발간하는 등 한국교회에 교부들의 신앙과 영성을 알리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