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 (17)의정부교구 참회와속죄의성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입력일 2022-08-30 수정일 2022-08-30 발행일 2022-09-04 제 3309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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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땅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남북 화해·일치 위해 기도를

김수환 추기경 제안… 2013년 완공
신의주 진사동성당 본떠 한옥으로  
민족화해센터·순교자 갤러리 한곳에

참회와속죄의성당 외부 전경.

우리가 새로 맞은 9월은 순교자 성월이다. 조선 후기의 혹독한 박해 중 특별히 이 달에 많은 신자들이 순교했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순교자 성월로 지정하여 기리고 있다.

조선 말기뿐 아니라 6·25전쟁 전후에도 남북한의 여러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이 피랍되거나 순교하였다. 이 시기에 순교한 근현대 신앙의 증인, ‘하느님의 종’ 홍용호 주교(프란치스코 보르지아, 1906~?, 제6대 평양교구장)와 동료 80위의 시복 안건에 대한 예비심사를 최근에 마친 상태다. 그분들 가운데는 우리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파리 외방 전교회, 메리놀 외방 전교회,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소속 외국인 선교사들도 23분에 이른다.

1945년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았지만 한반도는 남북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국토 분단의 아픔은 고스란히 우리 교회에도 전해졌다. 6·25전쟁 이전에 북한 교회는 평양교구와 함흥교구, 덕원자치수도원구로 나뉘어 57개 본당에서 복음화를 위해 매진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공산화로 종교 자유가 사라지면서 그곳의 모든 성당은 침묵의 교회로 변하고 말았다.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김수환 추기경(스테파노, 1922~2009, 전 서울대교구장·평양교구장 서리)은 2006년에 남북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특별한 성당 건립을 제안하였다. 남북 분단과 동족 전쟁, 극심한 대립과 적대시 상황에 대해 서로 참회하고 속죄하며 새로운 날을 열자는 취지였다.

김 추기경의 제안에 따라 많은 실향민과 이산가족,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신자들이 기도와 정성을 모으기 시작했다. 한민족복음화추진운동본부에서는 임진강과 북한 땅이 가까이 내려다보이는 파주 탄현면 통일 동산 근처의 터를 매입하여 서울대교구에 봉헌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 3월 성당 건립을 위해 첫 삽을 떴지만 공사 기간 중에 생각지 않은 여러 난관과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는 남북한의 화해와 일치가 평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보였다.

참회와속죄의성당 내부.

공사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면서 마침내 2013년 6월 25일에 참회와속죄의성당(준본당, 주보 평화의 성모 마리아)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분단 65년 만에 참으로 뜻깊고 특별한 성당을 건립하였다. 이기헌 주교(베드로·의정부교구장)는 2018년에 이 성당을 ‘북한 지역의 순교자들을 위한 순례지’로 선포하였다. 이제 순례자들은 북한 침묵의 교회와 암흑에 갇힌 신자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생명을 바친 순교자들을 떠올리며 기도할 성당을 갖게 되었다.

참회와속죄의성당 구역에는 여러 건물이 있다. 성당과 민족화해센터, 순교자 갤러리, 평화의 문이 옹기종기 붙어있다. 우뚝 솟은 성당은 북한에 있다가 종교 탄압으로 사라진 57개 본당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성당 외관은 평안북도 신의주 진사동성당을 본떠서 한옥으로 건립한 것이다. 내부는 함경남도 덕원의 베네딕도 수도원 성당 모습으로 꾸며졌다. 당시 덕원자치수도원구에서는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헌신적으로 사목하며 지역 복음화를 위해 매진했는데, 내부에서 이런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

제대 아래에는 평양에서 가져온 흙과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 주교(1796~1839, 조선교구 제2대 교구장, 파리외방전교회)의 프랑스 고향 흙, 그리고 여러 성물을 넣었다. 또한 제단의 반구형 모자이크(20m×7m)에는 예수께서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왕좌에 앉아 ‘평화’가 적힌 책을 펼치신 모습이 있다. 전능하신 그리스도 양쪽에는 남북한 지역을 대표하는 성인성녀들이 공손히 경배 드리고 있다.

이 모자이크는 장긍선 신부(예로니모,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담당)가 그린 밑그림을 바탕으로 평양 만수대 창작사 작가 7명이 제작했다. 그들은 북한의 원산 유리 공장에서 제작한 재료를 가지고 중국 단둥에서 40일간 작업하였다. 이후 모자이크를 이곳으로 옮겨 우리나라 미술가들이 5개월에 걸쳐서 부착했다. 남북한의 예술가들이 화합과 통일을 기원하며 만든 제단 모자이크는 성당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또한 제단 모자이크 아랫부분에는 이콘으로 제작한 성모님과 요한 세례자를 비롯한 12제자가 있으며, 신자석 주변에도 십자가의 길 14처가 이콘으로 만들어졌다. 내부 여러 곳에 있는 모든 이콘은 서울대교구 이콘 연구소 회원들이 제작한 것으로 사람들의 신심을 북돋워준다.

유리화 ‘기쁜 수확’.

아름다운 유리화는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는 최영심 작가(빅토리아, 1946~)의 작품이다. 그는 우리나라 여러 성당뿐 아니라 유럽의 여러 성당에도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담은 유리화를 많이 제작했다. 작품 활동 후기에 오면서 작가는 더욱 선적이며 단순한 색채로 성경의 주요 장면을 표현하였다. 성당의 유리화 가운데서 ‘기쁜 수확’은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시편 126,5)를 표현한 것으로 북한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선교사제와 수도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높은 천장에는 봉헌식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정진석 추기경(니콜라오, 1931~2021)이 쓴 “성부여.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 이 외에도 성당에서는 북한의 여러 교회를 떠올리게 하는 성물과 성화들을 볼 수 있다. 참회와속죄의성당은 의정부교구 준본당으로서 매일 미사를 봉헌하며 특히 매주 토요기도회를 마련하여 많은 사람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도와준다.

성당 옆의 민족화해센터 건물 외관은 평양 메리놀 외방 전교회 센터를 본뜬 것이다.

센터 복도에 상설 전시 중인 북한 작가들의 작품은 예술 작품을 통해서 북한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센터에는 남북의 평화와 일치를 위한 연구소와 기관이 있고, 다양한 교육과 프로그램, 연수와 피정을 할 수 있다. 민족화해센터의 1층 순교자 갤러리에서는 분단된 우리나라 교회의 현실을 알리는 전시물을 상설 및 기획 전시함으로써 문화와 예술을 통한 상호 이해와 치유의 길을 찾는다.

민족화해센터의 순교자 갤러리.

참회와속죄의성당 옆에는 봉안당으로 들어가는 평화의 문이 있다. 이곳에는 북한에서 순교한 분들을 위한 봉안 시설이 있으며 세상을 떠난 실향민과 이산가족, 신자들이 하느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다. 우뚝 솟은 종탑에는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종을 만든 회사에서 제작한 종이 걸려있다. 하지만 이 종은 지금 울리지 않는다. 언젠가는 참회와속죄의성당 종이 우렁차게 울려서 분단의 장벽을 훌쩍 뛰어넘어 침묵의 교회에까지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