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담대한 연민 / 박천조

박천조 그레고리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22-08-24 수정일 2022-08-24 발행일 2022-08-28 제 330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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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8일 수도권과 강원 일대에 하루 100~300㎜ ‘물폭탄’이 쏟아졌다. 곳곳에서 도로와 주택, 차량 침수 피해가 발생했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관측 사상 최대치의 하루 강수량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러한 재난은 분명 불가항력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큰 피해자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아직 우리는 ‘반지하’에 갇힌 이웃을 제때에 구하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처참한 재난 앞에서 터져 나온 일부 정치인들의 ‘말실수’들이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는 정신 나간 말도 미디어에서 쏟아졌다.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망가진 자리에 이토록 어울리지 않는 말이 또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봉사 활동’에는 점수란 말이 따라오는데, 봉사하기 위해 단체로 수해 현장을 찾은 정치인들을 보면서, 이러한 망언이 단순히 개인의 우발적인 실수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이 드러내는 것은 슬퍼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연민하지 못하는 우리의 정치, 아니 우리 사회 전체의 민낯이 아니었을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1년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미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연민의 증거자가 돼야 합니다. 측은한 마음이 없이는 결코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좋은 일은 할 수 있지만 이럴 때 마음에 가 닿을 수 없기에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는 것이 측은한 마음입니다. 우리도 자비로운 마음을 느끼도록 가까이 다가가 자애로운 행동을 보여 줍시다. 하느님의 고유한 행동 방식은 친밀함과 측은하고 자애로운 마음에 근거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요청됩니다.(제5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강론)

최근 새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를 조건으로 경제적 보상을 약속하는 ‘담대한 구상’을 발표했지만, 북한의 호응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사실 경제가 어려워도 남한에게는 손을 벌리지 않는 것이 북한의 자존심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동안에 이뤄진 인도적 지원이나 경제적 교류도 남북관계를 진전시키지 못했다. 남한의 ‘선의’도 북한의 마음에 가 닿지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퍼주기’와 같은 말들은 적대하는 남북 사이의 골을 더 깊게 갈라놓았다.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녹이기 위해서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더 담대한 연민이 필요하다.

박천조 그레고리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