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교황청에서 만난 유흥식 추기경/ 특별인터뷰

이탈리아 로마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2-08-09 수정일 2022-08-10 발행일 2022-08-14 제 3306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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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백신 나눔이 보여준 적극성으로 세계교회에 기여할 것”
처음엔 두려워 눈물도 흘렸지만
교황의 사랑·신뢰로 용기 얻어
사랑·봉사의 도구로 살 것 다짐
시노드, 복음 사는 데서 시작
정직하게 이웃 의견 경청하며
다양성 안의 조화 추구해야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은 한국교회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백신 나눔 운동을 펼쳐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며 “구체적인 활동을 통해 한국교회가 더 알려지고, 더 많은 기여를 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사진 이탈리아 로마 박원희 기자

가톨릭신문은 교황청 성직자부를 방문, 한국인으로서 교회 역사상 최초로 교황청 장관직에 임명된 유흥식(라자로) 추기경을 만났다. 지난 1년 동안 보편교회의 중추인 교황청의 장관으로 활동해온 유 추기경에게 한국교회와 보편교회의 오늘과 나아갈 방향에 관해 들었다. 아울러 유 추기경이 성직자부 장관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현장의 모습을 전한다.

-추기경님께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부임하신 지 벌써 1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성직자부 장관으로서, 그리고 전 세계 가톨릭의 중심인 교황청에서 생활하신 소회를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교황청에서 1년의 삶을 되돌아보면 일생의 가장 큰 변화를 겪는 매우 특별한 시기였습니다. ‘거룩한 모험’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왜 여기에 왔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눈물을 글썽인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특별한 사랑과 신뢰가 늘 새롭게 시작하는 힘과 용기를 줬습니다.

추기경 임명 후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개인 알현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추기경 임명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교황님과 교회, 전 세계의 모든 사제와 부제, 신학생을 더 많이 사랑하는 기회로 만들겠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흐뭇한 웃음으로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나를 계산하라”(Conta su di me)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널 위해 뭐든지 할 준비가 돼 있다’는 의미로, 교황님의 흘러넘치는 사랑과 신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하느님 고맙습니다. 성모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장한 순교자님들 계속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며, 매일 새롭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보편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필두로 큰 변혁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듯합니다. 현재 교회는 어떤 변화의 흐름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제가 교황님을 뵐 적마다 굉장히 많이 이야기 나눈 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냐”입니다.

교황님께서는 교황 직무를 시작하시면서 두 달에 한 번 ‘8인 추기경 회의’를 하셨습니다. 각 대륙과 교황청의 추기경님을 소집해 교회 생활 전반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이 회의는 시노드 교회의 모습으로 진행됐습니다. 서로 마음을 열고 경청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며 함께 성령의 뜻을 식별하려고 노력한 자리였지요.

교황님께서는 이 회의를 통해서 교회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잡아나가셨습니다. 교황님께서 보시기에 앞으로 교회가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노드 교회의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발표된 것이 새 교황령인 「복음을 선포하여라」입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는 온 인류에게 큰 고통과 함께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변화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코로나19를 통해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 누구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라는 가르침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죠.

「복음을 선포하여라」를 위해 「복음의 기쁨」, 「모든 형제들」, 「찬미받으소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시노드를 굉장히 어렵게 생각하는데, 시노드는 각자가 복음을 사는 데서 시작됩니다. 복음을 살면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이웃과 형제인 관계를 만들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함께 걸어가시도록 하는 거죠. 이건 가정도, 구역·반도, 모든 단체도, 교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 성직자부에서 본지 이승훈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유흥식 추기경.

-시노드 교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시는 교황님이 이끄는 변화에 다른 의견을 지닌 이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 안의 그러한 다양한 의견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교회에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오히려 획일적인 모습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지요. 우리가 믿는 하느님께서도 삼위일체이시고, 친교의 하느님이신데 우리 의견이 똑같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과 함께 공동체의 모습으로 교회를 이루며 하느님께로 나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이웃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입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것은 시노드 교회에서도 중요한 일이에요. 또 내 의견도 정직하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해요. 다만 그 다양한 것이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의 변화에는 사제들의 역할도 중요할 듯합니다. 성직자부 장관으로서 오늘날 세상과 교회 안에서 사제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며, 사제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사제의 쇄신 없는 교회 쇄신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먼저 사제들이 복음을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복음을 살면서 이웃을 향해 나아가고, 이웃과 함께 예수님의 새 계명을 살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공동체를 이룹니다. 시노드 교회의 모습입니다.

세계의 많은 신학교들을 다녀보면서 가장 많이 본 성화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구체적인 봉사를 하시는 모습이죠. 예수님께서 사제가 거행하는 성찬례로 모든 이를 하나로 묶어주시니, 사제가 중심이라는 건 한편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공동체의 아버지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사제직은 공동체에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공동체 없는 사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공동체의 아들이기도 해요. 또 교회는 하느님 백성이 함께 형제자매가 돼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니까 사제는 공동체의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사제는 ‘친교의 인간, 대화의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삶 속에서 사제의 역할이 자주 바뀔수록 멋있는 사제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갈수록 긴장 상태가 이어지는 남북 관계에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요? 특별히 교황청을 비롯한 세계교회가 한반도와 아시아 평화 정착을 위해서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요?

▲현재 인류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 많은 전쟁, 갈등, 폭력, 단절 등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어린이, 여성, 노인과 소외계층의 사람들이 더 고통을 겪게 됩니다.

한반도는 민족상잔의 6·25전쟁을 겪고 7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고, 상상을 초월하는 살상 무기들이 한반도의 하늘, 땅, 바다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와 타협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최고의 중재자 역할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교황님께서는 한반도 상황을 매우 안타깝게 보시고 부모, 형제, 자매가 갈라져 만나지 못하는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역할이든 하시겠다는 마음이십니다.

교황청은 북한과 대화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대답이 없어 기다리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저에게도 역할이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해 기도하며 기쁘게 응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유흥식 추기경이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 성직자부에서 본지 이승훈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이탈리아 로마 박원희 기자

-추기경님의 성직자부 장관 임명과 추기경 서임은 한국교회의 높아진 위상에 대한 평가이자 아시아교회에 대한 기대도 포함됐다고 생각합니다. 교황님과 교황청, 보편교회가 아시아 대륙과 아시아교회에 걸고 있는 기대는 어떤 것인지요?

▲교황청에서 아시아에 거는 기대는 매우 큽니다. 인구나 문화, 경제, 역사 등 모든 면에서도 아시아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죠.

교황님께서도 저를 성직자부 장관으로 임명하실 때 “교황청에 아시아인 장관이 한 사람밖에 없어 새로운 사람을 찾았다”면서 “그러던 중에 유 주교님의 이름이 떠올랐을 때 ‘아 찾았다!’라며 기뻐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 이번에 아시아 출신 추기경을 6명 임명하셨습니다. 새 추기경 임명을 통해서도 많은 이가 아시아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문화와 언어, 인종, 관습이 서로 다르고 정치와 사회, 경제에서도 다양한 모습이며, 그리스도인이 소수입니다. 아시아교회의 하느님 백성들은 믿음과 삶이 일치하는 증거의 삶을 통해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 면에 있어서 우리 한국도 고유한 위치를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한국교회가 앞으로, 세계교회와 아시아교회를 위해서 어떤 자세를 갖추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교황청에 왔을 때 교황청 안에서 드디어 한국인 장관이 나왔다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드디어 교황청이, 가톨릭교회가 서방교회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품는 교회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평신도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신앙을 위해 생명까지 바치는 순교로 신앙을 증거한 특별한 역사를 지닌 한국교회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한국교회 200주년을 맞아 103위 순교자를 시성하신 것은 수동적인 신앙생활을 하던 한국교회가 자신을 깨고 일어서는 은총의 계기였습니다. 나아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방한하신 2014년, 제6차 아시아청년대회와 124위 시복식을 통해 우리는 한국교회가 외국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가난한 이웃을 돕는 교회로 성장하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세계교회와 아시아교회 안에서 그 본연의 임무를 하는 데 조금 부족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한국인이 지닌 적극적인 자세, 또 믿음을 구체적인 삶으로 옮기려는 모습으로 세계교회를 위해 크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다들 자기 나라만 걱정하고 있을 때, 한국교회는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맞아서 백신 나눔 운동을 펼쳤습니다. 104억 원이 넘는 금액이거든요. 세계 어느 교회도 하지 못한 것을 한국교회가 했고,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구체적인 활동을 통해 한국교회가 더 알려지고, 더 많은 기여를 하면 좋겠습니다.

-현재 보편교회는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한 세계주교시노드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노드의 과정을 통해서 전 세계교회가 참으로 얼마나 시노드적인 교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그 기대와 전망을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교황님께서 2021~2023년 세계주교시노드를 선포하셨고, 우리는 그 두 번째 해를 살고 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시노드 교회가 바로 앞으로 나아갈 교회의 모습이라는 확신을 갖고 계십니다. 시노드 교회는 교회 생활의 모습이므로 어느 시점에 “이제 시노드 교회가 완성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동안 세계주교시노드를 하면서 본당·교구를 통해서 여러 가지로 조금 체험을 했지만, 계속 나아가는 과정이에요.

시노드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사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각자가 복음을 살고, 또 복음을 살면 이웃을 향해 나아가게 되죠. 그 작은 교회가 점점 더 확장하면서 그리스도교 정신이 세상 속으로 퍼져나가는 거거든요.

-마지막으로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이번에 교황님께서 저를 추기경으로 임명해 주신 것은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사제들을 더 잘 돌보고 봉사하고 부제들을 위해 봉사하고 신학생들을 위해 더 잘 봉사하고 돌보기 위해서입니다.

추기경은 물론 명예로운 칭호지만, 이를 통해 명예가 아니라 하느님을 더 사랑하고, 교회를, 교황님을, 모든 사제들을, 세상의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랑의 도구, 봉사의 도구가 되도록 살겠다고 약속을 드립니다.

우리 장한 순교자들이 믿음과 삶이 일치하셨으니 그 순교자들의 후예다운 모습으로 봉사하다가 하느님께서 원하실 때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사랑합니다. 기도 중에 뵙고 있습니다. 교황님을 위해서 또 저를 위해서도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이탈리아 로마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