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보물을 지켜라 / 정연진 베드로 신부

정연진 베드로 신부,홍보국 부국장
입력일 2022-07-20 수정일 2022-07-20 발행일 2022-07-24 제 3304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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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보물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보물의 기준은 개인마다 달라서 평범한 물건도 누군가에겐 보물이 될 수 있다. 나에게도 이런 보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구슬이다.

2014년 겨울, 사제품을 받은 후 나는 안양에 있는 호평본당으로 부임했다. 그곳에서 한 아이를 만났다. 교리교사 회합실에서 처음 만난 그 아이는 혼자서 구슬놀이를 하고 있었다. 많은 신부들이 공감할 것이다. 서품을 받은 직후에는 성분을 알지 못하는 어떤 호르몬이 몸에서 과다 분비된다. 그땐 눈 내리는 마당의 강아지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교리교사 회합실에 들어선 순간이 그랬다. 교리교사들 사이에서 구슬놀이를 하는 그 아이를 발견한 순간, 내 안에서 그 호르몬이 분비되고야 말았다.

교사들에게 간단히 인사만 건네고 나는 곧장 그 아이 앞으로 달려갔다. 내 앞에서 열심히 구슬을 날릴 때마다 나는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구슬놀이에 몰입하는 사이에 미처 통성명하지 못해 멋쩍게 서 있던 교사들이 어느새 내 뒤를 둘러싸고 있었다. 한바탕 놀이를 끝낸 후 그 아이는 나에게 선물이라며 구슬 세 알을 건네주었다. 그 모습을 본 한 교사가 귀띔해주었다.

“신부님, 이 친구가 구슬 선물하는 거 처음 봐요~ 신부님이랑 놀아서 재미있었나 봐요!”

내가 호평본당에서 받은 첫 선물. 구슬 세 알은 그 순간부터 나의 보물이 되었다. 그 보물을 언제나 수단 주머니에 넣고 다녔기 때문에 걸을 때마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장난을 많이 쳤다. 그만큼 아이들도 내게 많은 장난을 쳤다. 개중에는 내 수단 주머니에서 소지품을 쥐고 달아나려는 아이들도 있었다. 필사적으로 막아보다가 최후 방어선이 뚫리는 날에는 내 주머니에 있던 보물이 위태로웠다. 이게 왜 신부님 주머니에 들어있냐며 깔깔거리다가 마지막엔 꼭 그 구슬을 달라고 했다. 아이들에겐 신부님 수단 주머니에서 나온 그 구슬이 일종의 전리품 같았으리라.

“어서 돌려줘! 정말 미안하지만, 이건 내 보물이야!”

나의 주장을 비겁한 변명쯤으로 치부하는 아이들은 그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러면 나는 무력을 써서라도 다시 그 보물을 내 주머니로 탈환해내고야 말았다. 그저 방에 고이 모셔두면 안전한 것을, 내가 받은 첫 선물을 항상 몸에 지니고 싶어서 그렇게 안위를 걱정하면서도 꾸역꾸역 주머니에 넣어서 다닌 것이다.

교구청에서 생활하다 보니 수단 입을 일이 없다. 주머니에서 보물을 꺼내어 서랍 속에 안전히 모셔두었다. 가끔 서랍을 열다가 나의 보물을 볼 때면 설렘 가득한 나의 첫 출발을 떠올린다. 미숙하지만 뜨거웠고, 아팠지만 진심으로 살아왔던 시간이었다. 그래, 누구나 처음의 순간이 있다. 그 첫 마음을 떠오르게 하는 게 구슬 한 알이라면, 그것을 나의 보물이라고 소개하는 일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정연진 베드로 신부,홍보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