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조부모와 노인의 날 르포] ‘쟌쥬강의집’을 가다

염지유 기자
입력일 2022-07-19 수정일 2022-07-20 발행일 2022-07-24 제 3304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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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로원 아닌 내 집처럼’ 평범한 일상이 만드는 존엄한 노후
시설 아닌 진짜 내 집처럼 느끼도록
프로그램보다 평범한 일상에 집중
어르신들 안에 계신 예수님 섬기는
수녀들 헌신적 모습에 숭고함 느껴

기자가 방문한 7월 16일, 쟌쥬강의집 어르신들이 미술치료를 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가 운영하는 무료 양로원인 이곳에는 23명의 어르신들이 살고 있다.

‘제2차 조부모와 노인의 날’ 담화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연로한 이를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을 권고했다. 외로운 노인들을 방문하는 일이 우리 시대의 자비의 활동이라고 강조한 교황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한국대표 이상옥 헬레나 수녀)가 운영하는 무료 양로원 ‘쟌쥬강의집’을 찾았다. 서울 화곡본동에 위치한 쟌쥬강의집에는 23명의 어르신들이 6명의 수녀와 함께 살고 있다. 평균 연령 91세의 어르신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분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진짜 우리 집’

적막감이 감돌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까치발로 조심조심 들어간 양로원. 예상과 달리 복도 끝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아휴~ 여기는 무슨 색으로 칠해야 돼? 이게 지푸라기인지 대나무인지 알아야 칠하지!”

“정답이 어딨어, 그냥 칠하는 거지. 잘한다고 상 안 줘! 아무거나 좋은 거, 예쁜 걸로다가 해~”

색칠공부 도안을 무슨 색으로 칠할까 고민하는 어르신들의 말소리로 와글와글한 미술치료 시간이었다. 수녀들은 테이블마다 다니며 어르신들을 도와주고, 색칠 실력을 칭찬하기 바쁘다. 이상옥(헬레나) 원장 수녀는 “미술치료는 어르신들의 집중을 도와 치매를 방지하고, 각자의 색을 발견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림을 통해 심리 상태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 어르신들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한 테이블에 앉아 어르신들의 색칠을 도우며 재밌으신지 여쭤보니 “시간도 잘 가고 아무 생각도 안 나서 좋다”고 하신다. 옆의 할머니는 눈이 침침해서 재미없다고 하셨다. “나는 풀 뽑고, 물주는 게 좋아. 자고 일어나면 커 있어. 얼마나 예쁜지 몰라~” 할머니는 크레파스를 내려놓고 자신이 좋아하는 화단 가꾸기를 설명하느라 바쁘다.

양로원의 프로그램은 매주 1회씩 하는 미술치료와 복음나누기 외에 다른 것은 없다. 이 원장 수녀는 “어르신들이 이곳을 평범한 집처럼 여기도록 일부러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가정에서 늘 하던 야채 다듬는 일, 화초 가꾸는 일 등이 어르신들의 평소 일과인 이유다. 식판을 쓰지 않고, 가정용 식기만 쓰는 것도 어르신들이 이곳을 집 떠나와 사는 곳이 아니라 ‘진짜 내 집’처럼 느끼길 바라는 수녀들의 작은 배려다.

미싱하고 있는 쟌쥬강의집 모니카 할머니.

노년의 기쁨이 지켜지는 곳

공작실은 어르신들의 취미 활동 공간이다. 이곳에 머문 지 10년 된 91세 모니카 할머니가 만든 작품은 대단했다. 조각보, 삼베 돗자리, 메밀 베개, 포대기까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소화데레사 할머니는 형형색색 수세미를 짜고 계셨다. 몇 개 만들어 놓은 꽃 모양 수세미를 보고 기자가 칭찬하자 “다른 모양도 보여주겠다”며 곧장 방으로 가시더니 수세미를 한아름 안고 오신다.

묵주 만들기는 2인조 작업이다. 마리아 할머니는 구슬을 꿰고, 유스티나 할머니는 맞은편에서 묵주알 개수가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 마리아 할머니가 자주색 묵주팔찌를 선물해 주셨다. 팔찌 낀 팔을 흔들며 자랑하니 할머니들이 한마디씩 거든다. “아이구 예뻐라, 너무 너무 예쁘다. 이렇게 고울 때가 있었나 우리도….”

너나할 것 없이 작품 소개를 하느라 여념이 없고, 유쾌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 공작실. 어르신들은 각자 재능을 빛내며 기쁨을 찾고, 노년의 보람을 얻는 듯 보였다.

모니카 할머니는 하루에 베개를 두 개도 만들 수 있지만 기도하느라 바빠 시간이 없다고 하셨다. “맨날 ‘평화’를 위해 기도해. 우리나라의 평화, 우리들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 기도하지 않으면 평화가 안 와.” 나는 하루에 단 1분이라도 평화를 위해 기도한 적 있었는지 짧은 반성이 스쳤다. 조심스럽게 가족에 대해 여쭤봤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많이 아파서 잘 못 봐….” 아픈 아들 이야기에 신나게 솜씨를 자랑하던 할머니 눈에 단박에 눈물이 차올랐다. 어르신들에게 가족 이야기는 더 물을 수 없었다.

모니카 할머니가 기자에게 선물한 보자기.

주님의 현존 드러나는 공동체

초복 날. 주방에서는 어르신들을 위해 삼계탕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주방 직원 이영희(59)씨는 “신자가 아닌데도 수녀님들과 어르신들이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보면 일하다가도 마음이 뜨거워지는 순간이 있다”고 했다.

이날은 쟌쥬강의집이 생긴 1997년부터 이곳에서 원목사제로 있는 길고수(갈멜로·메리놀 외방 전교회) 신부의 영명축일이기도 했다. 작은 이벤트 시간. 어르신들은 길 신부를 위해 축하 노래를 불렀다. 길 신부는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떠나며 기자에게 말했다. “난 여기가 좋아, 나도 노인이잖아. 같이 사는 건 기쁨이야. 그래서 친구들이 떠날 때마다 마음이 아파.” 어설픈 한국어지만 신부님의 진심이 묻어나왔다.

이곳에서 6년째 지내시는 34년생 마리아 할머니는 신앙적인 이야기를 하셨다. 수녀들에게서 늘 살아 계신 예수님의 자비로운 얼굴을 본다는 말이었다.

안선숙(방문의 마리아) 수녀는 “어르신들을 모시며 분명 힘든 시간도 있지만, ‘행복하다’는 그 한마디를 들을 때마다 벅차오르고 어르신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난다”고 말했다. 이 원장 수녀도 “어르신들을 닦아드릴 때, 예수님을 닦아드리는 마음으로 한다”며 어르신들을 향한 사랑과 정성을 내보였다.

쟌쥬강의집 한 수녀가 어르신의 식사를 돕고 있다.

쟌 쥬강의 영성을 따라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는 평생 가난한 노인을 돌봤던 창립자 쟌 쥬강 성녀의 영성을 따라 가난하고 소외받는 어르신들을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보살피는 수도회다. 쟌 쥬강 성녀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고 하루하루 모금하며 어르신들의 의식주를 해결했다. 수녀들 또한 그 정신을 이어받아 정부 보조나 수익 사업 없이 모금과 후원만으로 양로원을 운영한다.

이곳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연로한 수녀도 있었다. 은퇴가 없는 수도회여서다. 같은 노인이 돼서도 어르신들에게 밥 한 숟가락 떠드릴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의 본분을 다할 뿐이다.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어르신들이 존엄성을 지키며 여생을 잘 마무리 하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는 수녀들의 모습에서 쟌 쥬강 영성의 숭고함을 깨달았다.

헤어질 시간. 할머니들은 헤어짐이 못내 아쉬운 듯 했다. 특히 공작실 모니카 할머니는 엘리베이터에 서 있는 내게 오시더니 조각보를 선물로 쥐여 주시며 “기자 아가씨, 건강해! 잘 가!”라고 하셨다. 마음을 나누겠다고 찾아 왔지만 오히려 어르신들에게서 마음을 받아가는 시간이다. “단 한 번의 만남으로도 새로운 우정이 싹틀 수 있다”는 교황의 말을 떠올리며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후원: 국민 094-01-0266-371 재)천주교가난한이들의작은자매회

염지유 기자 g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