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명예기자 단상] 얽힌 실타래와 자수

민구희 안젤라 명예기자
입력일 2022-05-17 수정일 2022-05-17 발행일 2022-05-22 제 329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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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내다 보면 얽힌 실타래와 같은 일들이 있다. 어디서부터 헝클어지고 어떻게 엉켜있는지 몰라 답답한 마음이 들 때다. 혼자 힘으로 마디마디를 풀어보겠다고 눈에 보이는대로 내 생각대로 손을 바삐 움직여보지만 처음보다 더 꼬이고 요상해진다.

몇 해 전 어려운 일이 있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희로애락의 한 조각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걱정과 두려움뿐이었다. 기도와 미사 지향도 이를 풀어달라는 마음으로 가득했고, 불안하게 출렁대는 나를 못 본 척 침묵하시는 것 같은 하느님이 원망스러웠다.

왜 그랬을까? 당시 난 그 일들을 마주한 채 바라보지 못하고 풀어야 할 ‘문제’로만 보았다. 해결하려고만 하니 내 뜻만 강해지고 주님과 사람들의 마음은 보이지 않았다. 주님께서도 그저 바라보며 기다리고 계시는데, 직접 나서보겠다며 분주하게 구니 더 얽히고설키었다. 결국 풀다 지쳐버리니 그제서야 마주하며 바라볼 수 있었고 실타래는 어느덧 풀렸다. 소르르… 내 생각과 판단, 감정들로 뒤얽혀버린 실타래! 얽혀있던 것은 바로 나였다. 나를 조금씩 내려놓은 뒤에야 찾아온 평화와 은총의 선물들이 얼마나 값지고 감사한 것인지 깨닫게 된 소중한 체험이다.

실타래를 생각하니 자수가 떠오른다. 색실로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수놓은 작품을 보면 참 정교하고 아름답다. 그런데 그 뒷면을 바라보면 복잡하게 오고 간 실 자국들이 무척 어지럽다. 정면의 아름다운 작품은 상상이 안 갈 정도다. 색깔이 화려하고 크고 멋진 작품일수록 더할 것이다. 우리 삶이 하느님과 함께하는 자수라면, 어려웠던 그 당시 아마도 주님께서는 더 다채롭고 고운 문양을 수놓고 계셨나 보다. 하지만 난 뒷면만 바라보고서는 얽혀있다고 불평하고 완성되어갈 작품을 희망하고 신뢰하지 못했다. 또 ‘실’이라는 본분을 망각한 채 내 마음대로 도안을 다시 그리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본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나라라는 작품을 함께 수놓아 가는 ‘실’이 아닐까? 주님 보시기에 좋은 그림과 무늬, 색을 나타내기 위해 그 자리에서 순명하며 제 몫을 다하는 착한 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제아무리 고운 색을 뽐내도 매듭으로 얽혀있다면 수를 놓을 수 없고 또 때가 타서 더러워진 실은 작품을 망칠 수 있다. 그러니 우리의 매듭을 풀어주시는 성모님과 우리를 더럽히는 죄를 용서해 주시는 주님 손안에 언제나 머물러 있어야 한다. 하느님 나라라는 사랑의 작품이 완성되는 그날을 믿고 고대하고 희망하며 말이다. 성모님 두 손에 매듭과 때투성이인 이 실을 봉헌하오니, 하느님 나라를 위해 언제나 깨어 기도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게 도와주소서. 아멘.

민구희 안젤라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