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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도 / 강주석 신부

강주석 베드로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2-04-12 수정일 2022-04-12 발행일 2022-04-17 제 329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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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위원회 일이 좋기는 한데, 그게 손에 잡히는 일이 아니지 않나?” 2015년 의정부교구에서 민화위 소임을 시작했을 때 어느 선배가 던진 질문이다. 사실 ‘천안함 사태’와 ‘5·24 조치’로 남북교류가 막힌 지도 오래된 터라 민화위가 이제 할 일이 없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많이 들려왔다. 민화위가 ‘할 일’에 대한 의견들은 다양한데, ‘대북지원사업’이 민화위의 중심 활동이라고 보는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선견’이 있는 해석이었다.

2018년 북미대화 이후 중단됐던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이 재개되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우리 민족의 화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한다. 지나고 보면 평창동계올림픽대회로 시작됐던 ‘한반도의 봄’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다시 얼어붙은 경색국면이 솔직히 우리에게는 더 익숙하다.

이제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터지면서 인류를 갈라놓은 냉전의 망령이 다시 소환되는 가운데, 어떨 때는 상대를 위협하는 남북관계가 ‘중력의 법칙’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적대하며 두려워하는 우리 민족의 화해는 ‘손에 잡히는 일’이 아닌 것이 분명한데, 선제타격뿐 아니라 핵무력 사용까지 언급하는 남북의 지도자들을 보면 또다시 전쟁 걱정을 해야 하는지 불안하다.

전쟁 위기가 고조됐던 2017년 12월,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는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국제대회를 개최했었다. 북한의 대남방송이 들리는 접경지역 파주 통일동산에 위치한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평화를 위한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성찰한 것이다. 언론에서는 북핵 해결을 위해 ‘선제타격’이나 ‘코피전략’(치명적인 피해를 입혀 항거불능 상태로 만든다는 군사용어)까지 언급하고 있었지만, 회의의 결과로서 무력 사용은 용납될 수 없다는 교회의 입장이 미국 주교회의 국제정의평화위원장 명의로 백악관에 전달되기도 했다.

주교회의는 지난 춘계 정기총회에서 올해 10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대회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와 미국 주교회의 국제정의평화위원회, 그리고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 행사는 화해의 사명을 가진 우리 교회가 분열된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성찰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평화이지만, 당신 자녀들의 화해와 일치를 원하시는 아버지 뜻이 이 땅에서 이뤄지기를 함께 기도하자.

강주석 베드로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