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물로만 보지 말아야 할 물 / 고계연

고계연 베드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입력일 2022-04-05 수정일 2022-04-05 발행일 2022-04-10 제 3289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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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아침에 눈을 뜨면 물부터 찾는다. 그것도 미지근하거나 뜨거운 음용수로 손이 간다. 커피를 마시더라도 아이스커피보다 뜨거운 커피를 선호한다. 예전과 달리 나이가 들면서 구미도 체질도 바뀐 탓이다. 그런데 당장 마실 물이 부족하거나 없다면 어떻게 될까. 물은 인체의 70%를 구성하고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가. 그러니 이런 상상만 해도 당황스럽고 끔찍하다.

지난달 22일 ‘세계 물의 날’을 떠올려본다. 매년 3월 22일에 기념하는 물의 날은 점차 심각해지는 물 부족과 수질오염을 막고 물의 소중함을 되새기자는 취지로 유엔이 지난 1992년 제정했다. 인류가 직면한 최대의 위기 중 하나가 물 문제이며, 질병의 3분의 2 이상이 물을 통해 발생하거나 전염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세계 물의 날’을 전후로 제9차 ‘세계 물 포럼’이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서 한 주간 열렸다. ‘평화와 개발을 위한 물 안보’를 주제로 한 이번 포럼은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의 일환이기도 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포럼 메시지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세계는 평화에 목마르다. 오늘날 물 안보는 오염, 갈등, 기후 변화와 천연자원 남용 등 다양한 요인으로 위협받고 있다. 그럼에도 물은 평화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다. 따라서 물은 단순히 상업적 이득이나 시장 법칙에 종속돼선 안 된다.” 또한 음수와 위생의 권리는 생명권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지구상 전체 물의 98%는 바닷물이고 나머지 2%가 담수다. 민물 중에서도 신선한 물의 99%가 지하수다. 그런데 땅속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지하수를 놓고 국가 간 물싸움도 빈발하다. 이번 포럼에서 제기된 어떤 주장에 깜짝 놀랐다. 지구촌 사람들 20억 명 이상이 안전한 물에서 배제된다는 것이다. 전 세계 인구가 75억 명이니 네 명 중 한 명꼴이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흙탕물을 가라앉혀 음용수로 쓰는 TV 광고나 영상을 보니 과장이 아니구나 싶다.

한국인들의 꿈의 여행지 몰디브를 다녀온 딸과 사위가 그곳 물 사정에 대해 얘기했다. “숙소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보이는 것이 바다이지만 물이 부족하다. 4성급 새 호텔의 샤워기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에서조차 짠맛이 난다.” 우리도 지난달 잇단 대형 산불로 귀중한 산림이 잿더미로 바뀌고 말았다. 지독한 봄 가뭄과 강풍 탓인데 물은 산불방지에도 빠질 수 없다.

필자는 자주 한강 변에서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 서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광대한 한강을 보면 감사의 마음이 절로 든다. 만약 한강이 없었다면 수도 서울이 존재할까 상상해 본다. 한강은 950만 명이 넘는 서울시민의 상수원으로 젖줄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소중한 물을 우리는 ‘물처럼 쓰고’ 있지 않는가. 가정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수도꼭지나 샤워기는 꼭 필요할 때 적당량만 틀었으면 좋겠다. ‘새거나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유엔이 정한 ‘물 부족 국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물 사정이 넉넉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세계 물 시장 규모가 2020년 기준 1000조 원으로 반도체 시장보다 두 배라고 한다. ‘나를 물로 보지 마’라는 광고카피가 이래서 나온 게 아닐까.

사자성어 상선약수(上善若水)는 ‘지극히 착한 것은 마치 물과 같다’는 뜻이다. 게다가 물은 겸손하고 여유가 있고 유연하며 만물을 이롭게 한다. 우리도 물의 속성을 닮아 막힘없이 흐르고 서로 소통했으면 좋겠다. 물을 물로만 보지 말고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처럼 여기자. 생명수인 물을 아끼고 보존하고 나눠 쓰도록 하자. 이런 우리의 마음가짐과 행동은 ‘공동의 집’ 지구를 지키고 인류의 공동선에도 일조하리라 믿는다.

고계연 베드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