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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그리스도 평화의 빛 / 강주석 신부

강주석 베드로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2-03-29 수정일 2022-03-29 발행일 2022-04-03 제 328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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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미국 뉴멕시코주 산타페대교구장 존 웨스터(John Wester) 대주교는 핵무기 경쟁의 중단을 촉구하는 사목서한을 발표했다. ‘그리스도 평화의 빛 안에서 살아가기: 핵 군축을 향한 대화’(Living in the Light of Christ’s Peace: A Conversation Toward Nuclear Disarmament)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서한은 특히 핵무기 보유가 잠재적 핵무기 공격에 대한 억지력으로 작용한다는 ‘현실주의 국제정치’의 인식에 도전하고 있다.

웨스터 대주교는 “우리는 더 이상 인류 가족 앞에 놓인 극도로 위험한 곤경을 부정하거나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전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새로운 핵무기 군비경쟁 중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교구가 있는 지역과 전 세계가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를 없애는 ‘평화를 위한 새로운 결의’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실제로 산타페대교구 관할지역에는 미국 핵무기 연구시설 전체 세 곳 가운데 두 곳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교구 내 앨버커키 인근 커틀랜드 공군기지에도 미국 최대의 핵무기 저장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목서한은 기존 핵보유국들이 감축에 관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현실과 ‘핵무기의 비확산에 관한 조약’(NPT)의 문제점도 언급한다. 더 나아가서 현재 강대국들의 군비경쟁 촉발 요인으로 조지 부시 행정부가 ‘탄도탄요격미사일제한조약’(Anti-Ballistic Missile Treaty)을 일방적으로 탈퇴했던 사실을 지목하고 있다. 미국인들에게 위협으로 느껴지는 미·중 갈등에다가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현재의 위기에는 강대국들과 미국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점을 용기 있게 지적한 것이다.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제 핵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전쟁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서, 더 강한 군사력이나 더 강력한 제재를 통해서만 ‘평화’를 지키고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현실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산타페대교구와 그 너머에 있는 우리는 그리스도 평화의 빛 안에 살도록, 그리고 그 빛을 세상 모두에게 비추도록 부르심받았다”고 역설하는 웨스터 대주교의 호소를 기억하면서, ‘그리스도 평화의 빛’이 세상의 어둠을 이길 수 있도록 더 간절히 기도하자.

강주석 베드로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