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님의 ‘고백록’
배기현 주교님께서 처음 책을 내셨다. 농담으로도 맑은 진심을 전하고 우스갯소리로도 철학과 신학의 핵심을 꿰뚫는 분이신데, 평소 하시는 말씀과 활자로 새겨진 글이 너무도 똑같아서 놀랍다. 총대리 신부 시절 주보에 연재했던 토막글과 주교로서 교회와 사회 문제에 관해 쓴 글을 한데 엮었고, 스승과 부모님을 향한 애틋한 마음도 간추렸다. 끝자락에는 “우리 신부만 봐요” 하며 어머니가 물려주신 일기장 아홉 권 가운데 마지막 두 편을 실었다. 시와 함께 쉬운 이야기로 풀어 쓴 담화문과 사목교서는 담백하면서도 울림이 크다.
나의 비참 하느님의 자비!
책의 중심은 아무래도 자전적 기록이다. 영문학자 아버지의 노름 끝에 ‘흔들고 태어난’ 출생의 비밀을 비롯해 서울 말씨의 19살 여인을 짝사랑한 소년의 ‘환상 교향곡,’ 중학교 1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술 담배와 잡기로 여러 차례 정학을 당하고도 퇴학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고등학교 시절의 아슬아슬한 ‘전과 기록’ 등 길고 진한 사춘기를 타고난 해학으로 복기한다. 공수부대 훈련 사고로 12년 만에 ‘턱걸이로’ 신학교를 졸업한 뒤 펼치는 사목 이야기도 눈물겹도록 재밌지만, 한가로운 무용담이 아니다. 허술하고 부끄러운 삶의 파편 속에 새겨진 하느님 자비와 섭리를 찾아가는 진솔한 영적 성찰이다.
“불량품인 너를 창조한 책임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내 직속 명단에 입적시켰다”는 사제 신원 의식은 “불쌍히 여기시어 뽑아 주셨다”(miserando atque eligendo)는 ‘자비의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목 표어와 결이 같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나는 결코 나를 기리려 하지 않았고, 오직 그분을 찬미하는 것이 내 뜻이었습니다.”(편지 213,6) 성인의 진심이 배 주교님의 마음처럼 느껴진다. 책 어디에도 성공담은 없다. 오히려 가련하고 불쌍한 존재, 결핍되고 비참한 인간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부끄러운 고백이 후렴처럼 반복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염치없는 세상에서 베드로의 뜨거운 눈물과 바오로의 투박한 질그릇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사도들의 후계자를 만나게 된다.
허약함의 영성
개인 병원을 접고 소록도로 들어가 오스트리아 수녀님들과 함께 아픈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사셨던 어머니는 아들의 신앙과 성소의 질긴 연줄이었다. 어머니의 눈물 어린 기도는 아들의 탁한 피를 정화하는 ‘신장 투석기’였다. 심지어 ‘고독이라는 무서운 괴물과 맞닥뜨린’ 아들이 슬픈 결심을 열어 보였을 때도 “걱정하지 말고 신부 뜻대로 하세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 앞에 거짓 없이 진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뿐이라 생각해요”라며 오히려 아들의 눈물을 닦아 주시던 어머니는 영원한 사랑과 무한한 신뢰의 살아 있는 성사였다. 아들의 고독을 가장 잘 헤아리신 분은 어머니와 늙은 아버지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서러운 고독이 하느님을 만나는 은총의 자리라는 사실도 다정스레 일깨워주셨다.
“목욕하면 깨끗하나 살아 있는 몸이라 때가 끼면 또 씻듯이 흐르는 물처럼 소리 없이 이 일을 되풀이해야겠지요.” 책의 마지막 문장으로 삼은 어머니의 당부 말씀대로, 주교님은 세상살이에서 넘어지고 더러워진 누구라도 부디 절망하지 말고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나라고 당신의 병고와 허약함마저 기꺼이 나누어 주신다. 허물 많은 내가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인생 여정을 40년 가까이 한결같이 동행해 주시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 책은 간소하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자비와 용서에 관한 아름답고 진솔한 찬미의 고백이다. 아무나 쓸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자신의 어둑한 얼룩조차 있는 그대로 대면할 수 있는 정직한 사람만의 몫이다.
“오직 사랑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실함의 용기다.” 1600여 년 전 아우구스티누스가 주교 시절에 「고백록」을 썼듯, 우리 시대를 위한 배기현의 고백록이 나왔다. 그리하여 집어서 읽는 이는 저마다 거룩한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