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사순 시기

홍성남 마태오 신부(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입력일 2022-03-16 수정일 2022-03-16 발행일 2022-03-20 제 3286호 15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삶에 대한 성찰의 수준 아닌
독성수치심 느끼게 하는 죄의식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해

사순 시기 동안 주님을 추모하고
하느님 사랑 기억하고 묵상할 때
진정한 부활의 의미 느낄 수 있어

영세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자매가 이렇게 말했다. “신부님, 주님께서 이제 그만 부활하시면 안 될까요? 해마다 사순 시기 동안 주님을 죽인 죄인이라 기도하는 것이 이젠 지겹네요. 내년에 또 살아나실 터인데 해마다 같은 기도를 하는 것이 이해도 안 되고요.”

자매의 말을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간혹 사순 시기를 지나치게 경직된 신학관으로 해석하는 경우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주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신 희생양이란 신학적 해석은 그렇다 치고, 강론시간에 신자들에게 ‘당신들이 주님을 죽인 범죄자들’이라고 호통을 치는 신부 이야기는 경악을 하게 한다.

만약 어떤 집의 부모가 죽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자식들을 보고 “너희들이 부모를 죽인 범인들이야!” 하고 야단을 친다면 아이들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심한 죄책감과 수치심 등 여러 가지 불편한 감정에 휘둘려 제대로 일상을 살지 못할 것이다. 이런 심리적인 현상이 우리 교회 안에서도 은연중에 일어나고 있다. 사순 시기만 되면 신자들이 고해소에서 고백하는 내용들이 죄가 아니라 신경증적인 증세가 엿보이는 내용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보면 간과할 사안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젊은이들에게 성당을 멀리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성당에 가면 죄의식을 느끼고 마음이 무거워져서 나가기 싫다고 한다. 건강한 죄의식이 아닌, 자기 삶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수준이 아닌, 독성수치심을 유발하는 병적 죄의식은 주님께로 가까이 가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멀어지게 한다. 또 신앙의 주요 내용이 행복추구가 아니라 죄에 초점이 맞추어질 경우, 종교인들은 가학적이 되고 신자들은 피해의식과 피학적 상태로 점점 악화돼간다. 그래서 심지어 정신분열증적인 망상적 신앙에 빠지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순 시기를 어떻게 보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일까? 주님을 애도하는 기간, 추모하는 기간으로 보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우리가 존경하는 분의 기일이 되면 무엇을 하는가? 그분이 생전에 사람들에게 베푸신 선행을 생각하며 그리운 마음을 갖는다. 이런 그리움이 그분이 다시 살아오시길 바라는 마음이 되는 것이고 이것이 진정한 부활의 의미인 것이다.

따라서 사순 시기 동안 우리가 해야 할 묵상은 주님이 생전에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어떤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셨는지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 분이셨는지를 묵상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그분의 부활이 진정으로 반갑고 간절해질 것이다.

홍성남 마태오 신부(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