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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기적이 따로 있나요 / 윤길운

윤길운 사비나,제2대리구 안양비산동본당
입력일 2022-03-08 수정일 2022-03-08 발행일 2022-03-13 제 3285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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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살던 아파트가 재건축을 하는 바람에 최근 본당 인근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됐다. 이사를 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아 “재건축이 끝나고 다시 입주할 때까지 이사하지 않게 해달라”고 집주인에게 애원하고 하느님께도 기도를 올렸었다. 그런데 집이 팔리고 새 주인이 “들어와 살겠다”고 연일 전화를 했다.

이사 갈 곳을 알아보는데, 전세 가격이 많이 올라 근처에 갈 만한 곳이 없었다. 지금 본당을 떠나는 것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던 중 부동산에서 마땅한 집이 나왔다며 연락이 왔다. 가서 보니 성당도 가깝고 평수는 작으나 마음에 들어 계약을 했다.

그런데 현 거주자가 계약일보다 1주일 정도 앞서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비를 마련하려면 며칠 기간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그렇게 하기로 하고, 우리는 며칠 후 이사할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받아야 할 전세금을 이삿짐이 나가는 것을 보고 그 날짜에 반환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대출을 받으려 금융기관은 물론 모든 지인들에게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어려웠다.

이런 저런 고심을 하던 어느 날, 집에 들어서니 남편이 “됐어! 됐어!”하는 게 아닌가! “무엇이 됐다는 건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에 직장에 같이 근무했던 동료가 갑자기 안부 전화를 해왔다는 것이다. 퇴직 후 십여 년이 넘도록 서로 연락이 없던 처지였다. 반갑게 근황을 나누다 사정 이야기를 하니 그 큰 금액을 선뜻 빌려주겠다고 자청했다는 것이다.

“아 하느님! 이 일이 정말이란 말입니까?” 풀썩 그 자리에 주저 앉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모든 일이 잘 해결돼 순조롭게 이사를 마치고 성수를 뿌렸다. 돌아보면 이전에 살던 아파트는 노후화한 탓에 배수관이 터지는 등 여러 차례 수리하느라 어려움도 많았다. 하지만 껑충 오른 시세를 맞추는 게 쉽지 않아 그 집에서 계속 살게 해달라고 많은 기도를 올렸었다.

그때 하느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은 것은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또 어렵게 고통받는 이들의 사정을 더 깊이 알게 하시려고 겪게 해주신 것 같다. 이 모든 게 하느님의 사랑이요, 그 사랑은 참으로 오묘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순진한 어린이가 엄마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떼를 써도 그것이 아이에게 유익하지 않다면 더 좋은 것을 주는 것이 부모들 마음일진대, 하물며 하늘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시는 하느님 마음은 어떠하시랴!

기적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그 무엇이 현실에서 실타래처럼 풀려 해결되는 것이다. 그것이 기적이요 하느님의 은총일 것이다. 두 손을 모으고 겸손된 마음으로 하느님께 절절이 기도할 때 하느님은 결코 나 몰라라 하시지 않는 것 같다. 오늘도 손을 모으며 깊은 마음을 담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미소의 눈물로 읊조려 본다.

윤길운 사비나,제2대리구 안양비산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