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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112년 후의 동북아 평화 / 박천조

박천조 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22-03-07 수정일 2022-03-08 발행일 2022-03-13 제 328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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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3월 26일 안중근(토마스) 의사는 뤼순감옥에서 순국하십니다. 지금으로부터 112년 전 일입니다. 안중근 의사께서는 사형선고를 받자 항소를 포기하고는 그동안 저술해 왔던 「동양평화론」을 완성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사형 집행에 따라 「동양평화론」은 서문 정도만 남아 있습니다.

「동양평화론」의 핵심 내용은 첫째, 일본이 전승 대가로 차지한 다롄과 뤼순을 중국에 돌려주고 이곳을 대한제국, 중국, 일본 등 세 나라가 동양평화를 실현하는 중심지로 삼는다. 둘째, 그곳에 ‘동양평화회’라는 경제공동체를 만들어 전 세계에 공표한다. 셋째, 재정확보를 위해 개인 회원을 모집하고 각 회원에게서 1엔을 회비로 징수한다. 넷째, 은행을 설립해 공용화폐를 발행하며, ‘평화지회’를 만들고 은행 지점을 두어 금융 및 재정 문제를 해결한다. 다섯째, 세 나라가 대표를 파견해 무장을 담당하고, 청년을 모아서 군단을 편성한다. 여섯째, 이 청년들로 하여금 두 나라의 언어를 배우도록 한다. 일곱째, 대한제국, 청, 일본의 황제와 천황이 가톨릭 교황에게 맹세함으로써 전 세계로부터 신뢰를 얻도록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양평화론」을 보자면 오늘날의 유럽연합(EU)과 같은 지역공동체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개발은행과 분쟁지역에 나가 있는 평화유지군의 모습도 떠오릅니다. 청년들의 공용언어 사용에서는 공공외교의 모습도 보입니다. 평화를 구체화하기 위한 안중근 의사의 실천적 인식이 놀랍습니다.

112년 전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 열강들의 각축전이 벌어졌듯이 지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냉전이라 부를 만큼 이미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전선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서방세계와 갈등하는 북한, 중국, 러시아가 우리 한반도의 머리 위를 지나고 있습니다.

당시 미·중·일·러가 탐냈던 지역이 ‘다롄’과 ‘뤼순’이었다면 지금은 한반도가 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1세기 동북아 평화의 거점도 한반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도성과 노력에 따라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완성될 수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에 ‘아세안’(ASEAN)이라고 하는 지역공동체가 있듯이 동북아시아에서도 지역공동체를 통한 평화구축이 가능할 것입니다.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리라”(시편 85,11)는 말씀이 우리 한반도에서부터 구현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 봅니다.

박천조 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