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인보성체수도회(상)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2-02-28 수정일 2022-03-02 발행일 2022-03-06 제 3284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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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 위한 사랑의 봉사 실천

인보성체수도회가 6·25전쟁 이후 사회적 약자들의 자립을 돕는 가톨릭사업가 양성을 위해 설립한 ‘구산후생학교’ 제1회 입학생들. 인보성체수도회 제공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을 증거했다. 인보(隣保)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미하며, 성체성사의 뜻에 깊이 박혀있는 정신이다.

인보성체수도회는 1956년 11월 19일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사회사업가였던 서울대교구 윤을수(라우렌시오·1907~1971) 신부에 의해 성체성사 정신의 핵심인 ‘인격존중과 평등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설립됐다. 윤 신부는 성체를 공경하고 성체성사의 정신에 따라 살겠다는 의도를 오롯이 담아 수도회 이름을 지었다.

설립자 윤 신부는 1932년 사제품을 받은 뒤 1937년 조선교회 최초의 ‘신부 유학생’으로 선발돼 프랑스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당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한국인 최초의 박사신부가 됐다. 6·25전쟁 중 군종사제로 임명된 그는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는데, 이는 그가 전쟁 후 피폐해진 삶의 현장에서 사회사업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는 데 전념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6·25전쟁 후 폐허가 된 상황에서 고아를 비롯해 한센병 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국제카리타스 등을 통해 체계적인 사회사업을 할 수 있는 ‘구산후생학교’를 설립했다. 지속적인 사회사업을 위해서는 가톨릭 사회사업가를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학교는 사회반과 수도반으로 구분했는데, 당시 수도반 학생들이 인보성체수도회의 첫 서원자가 됐다.

윤 신부가 펼쳤던 모든 사업은 인보정신의 구현으로 이어졌다. 특히 윤 신부는 인간을 유일한 존재로 존경하는 정신을 가장 강조했다. 그는 유고집에서 인보사상에 대해 “우리의 이상은 병들고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이웃을 돕는 것”이라며 “이 사상을 통해서만 행복할 수 있고 인간다운 이상을 찾을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정신과 육체가 여기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수도회 사도직 활동의 특징은 가장 어려운 이에게 이웃이 돼주는 사마리아인의 모습으로 이들을 보살피고 돌보며, 어느 누구든 하느님의 자녀로서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다. 실제로 윤 신부는 이런 정신에 따라 수도원을 성매매 여성과 죄수 등 모든 이들에게 개방했고 수도자들에게는 수도원을 찾는 모든 이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엄격히 당부했다. 또 수도자들 사이에서도 동등하게 대하도록 했다. 그리고 여기에 행복이 있다고 여겼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