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는 말씀을 실천하며 이웃들에게 먹을거리와 옷을 나누며, 간혹 사제관에서 돈이나 물건을 훔쳐가는 아이들에겐 화내지 않고 사랑으로 타일러 올바른 길로 인도했다.
신부님이 사목활동을 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신자들은 진 야고보 신부님께 피신을 권했다. 그러나 진 신부님은 공산주의자들에게 하느님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최후까지 양들과 교회를 지켜야 한다며 거부했다. 7월 1일 공산군이 삼척을 점령했고 다음날 신부님은 주일미사 후 체포됐다. 제대 앞에 꿇어 기도하는 신부님을 공산군이 성당 밖으로 밀어내자 “나는 도망갈 사람이 아니오. 내가 도망갈 것 같았으면 벌써 달아났을 것이오. 그러니 내 손을 묶지 말고 지금 이대로 끌고 가시오”라고 말하고는 총구 앞으로 의연히 걸어 나갔다. 몇 시간 후 삼척공고 김수성(요한) 선생도 체포돼 감금됐다. 공산군은 진 신부님과 김수성을 고문하며 배교를 강요했고, 심한 모욕도 줬다. 신부님은 7월 4일 밤 포박되어 공산군에게 끌려 나갔다. 죽음을 예견한 신부님은 옆방에 갇혀있던 김수성에게 축복하며 “요한,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신앙을 버리지 마시오”라고 당부한 후 걸어 나갔다. 신부님은 그날 밤 삼척 자원동 하천변에서 총살당해 순교하셨다. 그때 신부님의 나이 39세였다. 신부님의 시신은 마을 사람들이 인근 야산에 가매장해 주었고, 1951년 10월 춘천 죽림동 성직자 묘역으로 안치됐다.(당시는 원주교구가 설립되기 전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삼척 성내동성당에서는 시복시성 기도가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다. 진 야고보 신부님의 시복시성이 이루어지기를 빈다. 아멘.강영우 이냐시오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