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이제 다 이루었다 / 함상혁 신부

함상혁 프란치스코 신부 (수원교구 공도본당 주임)
입력일 2022-02-22 수정일 2022-02-22 발행일 2022-02-27 제 328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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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습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정말 다 끝났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글입니다. 그동안 수고한 저 자신에게는 칭찬을, 저의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들께는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 8회차 글을 쓰며 저는 요한복음 19장 30절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이제 다 이루었다” (참고로 새 번역 성경에는 “다 이루어졌다”로 번역되어 있는데 저는 예전 성경이 더 잘 기억납니다.) 처음에 원고 제의를 받았을 때 다섯 번 쓰면 된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섯 번 정도는 쓸 수 있겠지” 생각하고 신나게 썼습니다. 어느 정도 원고를 완성한 후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다 하고 났을 때의 뿌듯함을 느끼며 원고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저는 분명히 5회라고 들었는데 8회까지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고청탁서에 8회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청탁서 메일은 이미 지웠기에 부랴부랴 다시 쓰기 시작했지만 무엇인가 당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메일을 좀 더 자세히 확인하지 못한 저의 책임이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더 열심히 해 보자는 생각으로 글을 썼습니다.

오늘 마지막 글을 쓰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내가 쓴 글이 교우분들께 도움이 되었을까?” “나는 편하게 쓴 글인데 내용의 깊이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8회차 글을 마무리하면서 갑자기 저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나의 인생을 다 마친 다음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어떤 말을 하게 될까?”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신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짧은 한마디를 하십니다. “이제 다 이루었다(다 이루어졌다).”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은 극심하지만 본인의 사명을 완수했다는 기쁨과 안도의 말씀입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말씀을 남기신 것입니다.

저는 마지막 순간에 어떤 말을 하게 될까요? 가끔씩 대청소를 하거나 짐을 정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책장 한편에 있는 여러 축하카드를 발견하게 됩니다. 영명축일 때나 서품 기념일 때 받은 선물들입니다. 사제를 위한 기도( )번, 미사참례( )번, 묵주기도( )단.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참 고마운 선물입니다. 그리고 무서운 선물입니다. 왜 무서운 선물일까요? 저는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교우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기도해 주셨을까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던 그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너무나 당연하게 받곤 했던 영적 선물의 무게와 책임감을 잊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 보좌신부님이, 우리 본당신부님이 거룩한 사제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그 소중하고 아름다운 마음대로 살지 못한다면 제가 받을 벌은 얼마나 큰 것일까요? 25년 전 신학교 입학할 때 선물을 받았는데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학사님,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성인 사제 되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성인(聖人) 사제라는 단어. 성인품에 오를 정도로 거룩하게 살라는 뜻입니다.

그때는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살다 보면 다 성인 사제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하느님 사랑에 더 가깝게 다가가고 깊은 묵상에서 나오는 삶의 진리와 지혜를 가르쳐야 할 텐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의 이끄심을 청하며 기도합니다. “당신은 저의 하느님 당신의 뜻 따르도록 저를 가르치소서. 당신의 선하신 영이 저를 바른길로 인도하게 하소서”(시편 143,10)

함상혁 프란치스코 신부 (수원교구 공도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