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고(故) 정 바오로 신부님 1주기를 기리며

정순임(마리아·광주대교구 여수 문수동본당)rn
입력일 2022-02-08 수정일 2022-02-08 발행일 2022-02-13 제 328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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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을 떠나보낸 지난 한 해 매순간이 안타깝고, 회한의 기도와 성가는 아름다운 ‘회소곡’이 되었습니다. 정 바오로 신부님의 선종 소식을 듣고도 코로나로 인해 장례미사는 참례하기 어려울 것 같았지만, 긴 겨울밤을 꼬박 지새우고 어둠을 가르고, 새벽 찬바람 마주하며 광주행 첫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순천을 막 지날 무렵, 창문에 겨울비처럼 내리는 서설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려, 멀리 보이는 시골 고즈넉한 풍경은 정겹고 포근하건만 내 마음은 서설이 아닌 죽비로 맞은 것처럼 쓰라리고 믿어지질 않았습니다.

광주대교구청 성당은 이른 시간으로 고요와 침묵만 흐르고, 성당 제대 앞 순백의 국화와 장미 꽃동산 속 영정 사진 속의 신부님 모습에서 잔잔한 미소를 띠시며, ‘마리아야 왔느냐!’하고 부르시는 것 같아 참았던 눈물이 뜨겁게 흐르고 목이 매여 옵니다. 분향소에서 향을 피우고 온 마음과 정성으로 큰 절을 드리고 몇 분의 신부님과 수녀님, 교우들과 연도와 연미사를 드리고도 영정 앞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40여 년 전, 서교동본당에 계실 때, 친정어머니가 주일 새벽미사 후 귀가 길에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었던 저에게 신부님의 기도와 위로의 말씀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신부님과 인연이 되어서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았지만 삶의 고단함으로 잠시 잊고 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9년 사제 성화의 날에 정 신부님의 금경축 미사와 축하 공고를 보고 너무 반갑고 그리워 신문에 축하글을 보냈습니다. 정 바오로 신부님도 신문에 실린 글을 보시고, 교구 신부님들로부터 많은 축하를 받으셨다고 너무 좋아해 주셨습니다. 그 계기로 신부님께서는 신앙 성숙에 도움이 되는 영성적인 글과 음악을 늘 보내주셔서 행복하고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늘 뵙고 싶은 마음에 여수 여름 바다를 말씀드리며 초대했더니 ‘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며 겨울에 오신다고 말씀하시곤 연락이 닿지 않아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어느 교구 신부님으로부터 ‘수술을 받으시고 위중하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면회도 안 되어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면서 미사와 모든 기도를 드리며 신부님의 쾌유를 빌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새해 축복의 글을 보내 주시고 2주 후 ‘재활 치료 중이시다’며 ‘너무 힘들다’며 힘겨워하신 신부님의 말씀에 ‘신부님 힘내시고 천천히 조금씩만 하십시오’했던 말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44년 동안 단 한 번도 뵙지 못한 마음, 지난 1년 내내 후회와 회한이 되어 그저 뜨거운 눈물만 가슴을 적십니다. 1~2년 짧은 시간이었지만 신부님의 말씀 오래오래 새기며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평생 정의와 사랑의 영성을 가지신 신부님과 짧은 인연일지라도 함께할 수 있었기에 너무나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신앙 여정에서 긴 여운과 향기로 간직하겠습니다.

정 바오로 신부님, 너무너무 뵙고 싶습니다. 교회가 성화와 완덕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천상에서 전구해 주시기를 청하옵니다.

정순임(마리아·광주대교구 여수 문수동본당)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