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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성 생활의 날 특집]코로나19 시대에 다시 보는 베네딕토 수도규칙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2-01-26 수정일 2022-01-26 발행일 2022-01-30 제 3280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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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는 일’이 기도가 될 때 영혼을 구하는 양식이 된다
일도 하느님 찾는 삶의 일부
노동이 지니고 있는 가치 강조
영혼 육체 통합된 존재인 인간
기도와 일 역시 조화 이뤄야

기도하고 일하는 방법은
천국에 이르는 덕을 닦는 것
악습 막고 회개로 깨끗해지며
매사에 하느님 영광 위해 기도

베네딕토 수도규칙은 10개가 넘는 장에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기도 중인 수사들의 모습. 사진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촬영되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동체가 함께하는 신앙생활이 어려워진 이 시기,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성 베네딕도회의 모토는 세상 속에서 각자가 일을 하면서도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신자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축성 생활자들을 기억하고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축성 생활의 날, 서방 축성 생활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베네딕토 성인의 「수도규칙」(이하 수도규칙)을 통해 삶 속에서 신앙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비결을 살펴본다.

팬데믹, 기도하고 일하라

지난해 가톨릭신문사(사장 김문상 디오니시오 신부)와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이미영 발비나)가 실시한 ‘포스트 팬데믹과 한국천주교회 전망에 관한 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거의 대부분이 ‘세상 속에서 가톨릭 신앙을 지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고 싶다’(93.6%)고 응답했다. 팬데믹으로 성당에 모여 신심 활동을 하기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신자들이 일상 안에서 신앙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각자 세상의 직무와 일 가운데에서 살아가면서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고 복음 정신을 실천”(「교회헌장」 31항)하는 평신도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일상생활 중에 기도도 잘하고 일도 잘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막상 세상에서 일하는 평신도의 입장에서 세상의 일은 도무지 거룩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쩐지 기도와 일은 물과 기름처럼 느껴진다. 이럴 때 수도규칙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수도규칙은 베네딕토 성인의 유일한 저작으로, 축성 생활을 하기 위해 따라야 할 최소한의 규칙을 정리한 책이다. 이미 베네딕토 성인이 집필하기에 앞서 많은 수도규칙서들이 나와 있었지만, 베네딕토 성인의 수도규칙이 교회 수도 생활에 미친 영향은 다른 규칙서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현대에 와서는 평신도에게도 의미 있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수도규칙 해설과 묵상을 담은 「생명의 길」을 저술한 영국 신학자 에스더 드 왈 교수는 “베네딕토 성인이 사제가 아니었다는 사실, 또 수도원의 기원이 평신도 운동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사람이 많다”면서 “수도규칙은 평신도가 평신도를 위해 쓴 책”이라고 밝힌다.

베네딕토 성인은 수도규칙에서 “자신의 손으로 노동함으로써 생활할 때 비로소 참다운 수도승이 된다”며 육체노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진은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 수녀들이 유기농 잼을 만드는 모습.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마리아와 마르타, 기도와 일

기도와 일의 관계는 마리아와 마르타의 일화(루카 10,38-42)에 견줄만하다. 한 수도자가 시나이 산으로 사막교부 실바노 아빠스를 찾아갔다. 그는 일하고 있는 수도자들을 보고 “사라져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라”며 “사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에 실바노 아빠스는 그 수도자를 기도할 수 있도록 독방으로 안내했다. 그렇게 9시간을 보낸 그 수도자가 왜 식사시간에 부르지 않았냐고 묻자 실바노 아빠스는 “당신은 영적인 사람이라서 음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육적인 우리는 식사하기를 바라고 이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제야 수도자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

실바노 아빠스는 “참으로 마리아도 마르타를 필요로 한다”며 “우리가 마리아를 칭찬하는 것은 사실상 마르타 덕”이라고 가르쳤다.

초기 사막교부들의 전통처럼 베네딕토 성인도 육적인 일을 결코 경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의 교부들과 사도들처럼 자신의 손으로 노동함으로써 생활할 때 비로소 참다운 수도승이 된다”고 강조했다.(수도규칙 48, 8) 수도규칙에는 다양한 일이 언급되지만, 육체노동에 관해 한 장(48장)에 걸쳐 설명하면서 일과 축성 생활이 분리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성인은 “한가함은 영혼의 원수”(수도규칙 48, 1)라고 말하며 일을 하는 것이 영혼을 구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강조했다. 일을 하느님을 찾는 삶의 일부로 보고 기도와 일치·조화시킬 수 있도록 이끈 것이다. 세속적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먹고 사는 일’이 기도와 마찬가지로 영혼을 구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베네딕토 성인이 강조한 ‘기도하고 일하는’ 첫 걸음이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본원장 허성석(로무알도) 신부는 “기도가 영혼을 살찌우는 양식을 얻는 활동이라면, 노동과 일은 육체의 양식을 얻는 활동”이라면서 “인간은 영혼과 육체가 통합된 존재기 때문에 기도와 일이 모두 필요하고,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 영혼도 병들 수 있다”고 해설했다.

안드레아 만테냐의 ‘베네딕토 성인’.

수덕, 영혼의 ‘손 씻기’

수도규칙에서 안내하는 기도하고 일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성인은 “하늘의 고향을 향해 달려가려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초보자를 위해 쓴 이 최소한의 규칙(수도규칙)을 그리스도의 도움을 받아 완수하라”면서 “그리하면 덕행의 더욱 높은 절정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수도규칙 73, 8~9) 기도하고 일하는 방법은 바로 수덕, 하늘나라에 이르기 위한 덕행을 닦는 것이다.

성인이 말하는 덕은 동양의 ‘덕’(德)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덕이란 쉽게 말해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힘, 곧 ‘선한 습관’이다. 수덕을 통해 선한 일을 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면,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선행을 하게 된다.

수덕은 마치 코로나19 대유행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스크 쓰기와 손 씻기를 한 것과 비슷하다. 마스크 쓰기도 손 씻기도 처음에는 답답하고, 깜빡 잊기도 하지만, 이를 의지적으로 실천하고 반복하면서 바이러스를 막고, 청결을 유지하는 습관으로 자리잡은 것처럼 수덕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불편하지만 선한 습관이 몸에 배도록 의지적으로 반복해서 노력하는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수덕은 악한 습관을 막아 죄를 짓지 않는 영혼의 마스크 쓰기이자, 회개로 깨끗해지는 영혼의 손 씻기인 셈이다.

수도규칙에는 삶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기 위한 덕을 닦는 여러 방법이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당연히 기도다. 수도규칙은 10개가 넘는 장에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다루고 있고, 그 밖의 장에서도 기도하는 법을 이야기한다. 성인은 “모든 일에 있어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수도규칙 59, 6) 하라고 당부한다. 일이 기도가 되는 것이다.

일을 기도로 삼는 비결은 축성 생활자들이 해왔듯, “기도에 자주 열중”(수도규칙 4, 56)하는 것이 가장 좋다. 복잡하지 않은 노동을 하고 있다면 일을 하면서 짧은 성경 말씀이나 단순한 기도를 반복하면 일하면서도 기도할 수 있다. 깊은 주의를 요하는 일을 한다면 일하는 중에 기도하기는 어렵다. 그럴 땐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고 또 정해진 시간에 거룩한 독서를 하라”(수도규칙 48, 1)는 조언처럼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일을 마친 후에 등 시간을 정해 규칙적으로 자신의 일이 하느님의 영광이 되도록 청하는 기도를 하면 도움이 된다.

허성석 신부는 “일상 속에서 의지를 가지고 반복해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도가 몸에 배어 ‘기도의 상태’가 된다면 삶이 하느님 안에서 이뤄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