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 (3)인천교구 답동주교좌성당·역사관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입력일 2022-01-25 수정일 2022-01-25 발행일 2022-01-30 제 3280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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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즈막한 언덕에 우뚝 서서 드넓은 바다 품어안은 성당

1897년 건립… 사적 287호로 지정
주교관으로 사용하던 건물 개조해
교구 흐름 볼 수 있는 역사관으로 활용

인천 답동주교좌성당 내부.

인천교구 답동주교좌성당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지금 자리에 우뚝 서 있다. 나지막한 언덕에 있는 성당은 아래의 인천항을 굽어보고 있다. 어머니가 자녀를 감싸주듯이 답동성당은 단아한 모습으로 우뚝 서서 넓은 바다와 사람들을 품어준다. 뱃사람들을 안전하게 인도해 주는 등대처럼 성당은 인천 사람들에게 삶의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 주고 있다.

조선교회 외국인 선교사들은 1888년에 개항지인 제물포 지역을 살펴본 후, 답동 언덕에 성당 터를 마련하였다. 인천 최초의 성당 터를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전교 활동이 시작되었다. 1889년 빌렘 신부(J. Willhelm, 1860~1938, 파리외방전교회)가 제물포본당(현 답동주교좌본당)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하여 임시 성당에서 사목하였다.

신자가 늘어나자 명동대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E. Coste, 1842~1896)에게 답동성당의 설계를 의뢰하였다. 그에 따라 첫 번째 성당은 1895년에 착공하여 1897년에 준고딕 양식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다시 성당이 협소해지자 1935년부터 1937년까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개축하였다.

이때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외곽을 벽돌로 쌓아 올려 로마네스크 양식의 지금 성당을 완성하였다. 성당의 외부를 벽돌로 쌓고 가장자리에 화강암 테두리를 하여 장식적인 효과를 더해주었다. 성당 전면의 원형 유리 창틀에는 팔각형의 별(바다의 별) 모양이 있다. 이 별은 육지와 바다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참된 삶의 나침판 같은 역할을 한다. 답동성당은 사적 287호로 지정되어 신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답동주교좌성당 외부 전경.

답동성당 구역에는 사무실과 유치원을 비롯한 여러 부속 건물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인천교구 역사관이다. 원래 이 건물은 1986년에 주교관으로 건립되어 사용하였으나 2018년에 교구청이 신청사로 옮겨가면서 문을 닫았다. 이후에 내부를 개조하여 교구 설정 60주년 기념으로 2021년 3월에 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 인천교구의 후원과 인천 교회사연구소의 협력으로 역사관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인천교구 역사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로비에서 한국천주교회와 교구의 역사를 담은 소개 영상이 관람자들을 맞이한다. 3층 역사관에는 총 6개의 전시실과 특별 전시실이 있다. ‘1전시실-피어린 교회의 봄’, ‘2전시실-선교라는 이름의 순교’, ‘3전시실-지역 교회의 여명’, ‘4전시실-세상과 함께’, ‘5전시실-역사와 함께’, ‘6전시실-헌신’, ‘특별전시실-태암’이다.

각 전시실에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관련된 유물과 유품, 서적과 회의록, 사진과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우리나라 교회의 역사와 이 지역 출신의 순교자들, 1962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시작과 함께 설정된 인천교구의 역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과 교구 사제들, 수도자와 평신도들의 헌신적인 신앙 활동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 인천교구에서 열성적으로 복음을 전한 메리놀 외방 전교회(이하 메리놀회) 선교사들의 전시공간이 눈길을 끈다. 메리놀회는 아시아 지역의 선교를 목적으로 창설된 미국 최초의 외방 전교회다. ‘메리놀’(Mary knoll)이란 명칭은 미국 메리놀회의 본부 자리에 있는 언덕 이름, 즉 ‘마리아의 언덕’(Mary’s knoll)에서 유래한다.

‘제5전시실-역사와 함께’에는 메리놀회의 노봉 요셉 신부(Joseph P. Gibbons, 1907~1971) 신부, 전 미카엘 신부(M.Bransfield, 1929~1989), 진필세 신부(J. P. Sinnott, 1929~2014)의 사목활동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 옆에서는 최분도 신부(B. Zweber, 1932~2001)의 유품도 볼 수 있다. 최분도 신부는 1964년에 미군 함정을 인수하여 ‘바다의 별’ 병원선으로 개조해 여러 섬을 돌면서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살펴주었다. ‘바다의 별’은 우리나라 최초의 병원선이었다.

‘제6전시실-헌신’에는 인천교구의 초대 교구장 나길모 주교(McNaughton, 1926~2020)와 2대 교구장 최기산 주교(1948~2016)가 사용했던 소박한 사무실과 침실 그리고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교구 역사관의 끝 지점에 ‘특별 전시실-태암’이 있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근대사의 격동기에 살았던 태암 장기빈 선생(레오. 1874~1959) 일가의 굳은 신앙을 볼 수 있다. 장기빈 선생의 장남 장면 박사(요한, 1899-~1966) 박사의 친필과 자료도 전시되어 있다. 화려한 삶보다 신앙 안에서 정갈한 삶을 꿈꾸었던 장면 박사는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 회원으로서 수도복을 입고 선종하였다. 장기빈 선생의 차남 장발(루도비코) 화가, 차녀 장정온(앙네다) 수녀, 삼남 장극(바오로) 교수, 장면 박사의 사남 장익(십자가의 요한) 주교의 자료도 전시되어 있다.

인천교구 역사관에는 전시실뿐 아니라 1층에 작은 경당을 갖춰 누구든 관람 중에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경당의 제단 양쪽에는 성 앵베르 주교(라우렌시오, 1796~1839), 성 모방 신부(베드로, 1803~1839), 성 샤스탕 신부(야고보, 1803~1839)의 유해를 모신 성광, 성 김대건 신부(안드레아, 1821~1846)의 유해가 담긴 성광을 현시하였다.

우리 교회에는 많은 건물이 있는데 때로는 건물의 용도가 다해서 고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옛 건물을 허물어버리면 그 안에 담긴 소중한 역사와 신앙의 추억까지도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다. 인천교구에서는 지혜를 모아 옛 주교관 건물을 개조하여 역사관으로 꾸며 지난 이야기가 끊이지 않게 하였다. 역사관의 유물은 단순히 옛 물건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지난 이야기를 속삭여 주면서 지금 우리 자신을 바라보며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인천교구뿐 아니라 다른 교구나 교회 기관, 수도원이나 성당에도 크고 작은 역사관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인천교구의 역사관은 불과 1년 전에 개관하였지만 다양한 유물과 유품, 영상 매체를 통하여 교구의 역사를 속삭이며 사람들을 다시 일깨워준다. 40여 명의 자원 봉사자들도 각자 정해진 시간에 입구에서부터 방문객들을 친절하게 맞이한다. 역사와 문화를 통해서 신앙을 일깨우며 복음을 전하는 봉사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인천교구 역사관 바로 옆에는 답동주교좌성당이 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제물진두순교성지와 성모순례지도 있다. 그곳도 함께 방문하여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신앙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인천교구 역사관 내부.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