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경청의 미덕 / 안봉환 신부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전주교구 문정본당 주임)
입력일 2022-01-25 수정일 2022-01-26 발행일 2022-01-30 제 3280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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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시작된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의 여정은 2023년 10월 로마에서 그 정점을 이룰 것이다. 우리나라 각 교구에서도 친교, 참여, 사명을 주제로 한 시노드 정신을 새기려고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세계주교시노드의 편람을 보니 지역 교회 내에서 하느님 백성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경청과 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교회 문서에 종종 등장하는 ‘경청’, ‘귀 기울임’, ‘들음’이라는 표현은 전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단어 가운데 하나이며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경에서 ‘진리’라는 단어의 히브리적 의미에 의하면 ‘듣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단지 주의깊게 귀를 기울인다는 것만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자기의 마음을 열어 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사도 16,14 참조) 또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마태 7,24-26 참조)

이 편람에서 ‘경청’이라는 단어는 약 100회, ‘귀 기울이다’는 약 27회, ‘듣다’는 약 14회 정도 사용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청’은 서로의 의견을 편견 없이 상호 신뢰와 열린 정신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강조할 때 사용되고 있다. ‘귀 기울이다’는 하느님(성령)의 말씀과 교회의 생생한 전승 그리고 시대의 징표뿐만 아니라 특히 하느님 백성 가운데에서 소외된 이들의 울부짖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할 때 사용된다. ‘듣다’는 하느님(성령)의 말씀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 계층의 체험, 특히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강조할 때 사용되고 있다.

그러기에 목자들에게는 돌보도록 맡겨진 양 떼에게 주의를 기울여 경청하도록 요청하고, 평신도들에게는 그들의 시각을 자유롭고 솔직하게 표현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또 편람은 시노드 과정이 경청, 식별, 참여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역설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첫 번째 과정인 경청의 주된 목표는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여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을 수 있는 것”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그 뜻에 일치할 때까지 하느님 백성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은 하느님 말씀을 듣는 존재이다. 그런데도 성경뿐만 아니라 교회 문서에서 ‘경청’과 ‘귀 기울임’과 ‘들음’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로부터 인간은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지 않고 듣는 것을 싫어하며 하느님의 호소에 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의 세계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쉽게 배제하거나 내치거나 무시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하여 종종 말씀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중요하지 않은 이들이라고 여기는 이들, 그리고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용기에는 경청하는 겸손이 따라야 한다. 주위에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좋은 의견이라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때때로 우리를 갈라놓으려 위협하는 나이, 성, 재력, 능력, 교육 등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이로부터 들은 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생각을 기꺼이 바꿀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겨울날 새벽 미사를 봉헌할 때 추위에 무척 약한 나는, 내복 위에 얇은 옷을 몇 벌 껴입고 그 위에 수단을 입는다. 새벽 미사를 봉헌하려고 제의실에 들어갔더니 평소처럼 어린 복사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의를 입고 있는데 복사들이 “신부님, 추워요!”라고 말한다.

“많이 춥니?”하고 묻자, “예, 옷이 얇아서 무척 추워요!”라고 대답한다. 복사복을 만져보니 정말 얇다. 그 주간 가족회의를 통해 복사들에게 망토를 사주기로 했다. 망토가 도착한 뒤 어른들과 복사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신부님, 망토가 뭐예요? 미사 전에 잠깐 갈아입는 건데, 아이들이 추위를 참을 줄도 알아야죠.” “신부님, 너무 따뜻해요. 저희의 말에 귀 기울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전주교구 문정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