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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정교분리’와 민족화해위원회 / 강주석 신부

강주석(베드로)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1-12-28 수정일 2021-12-28 발행일 2022-01-02 제 3276호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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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각 교구에는 민족화해위원회가 구성돼 있다.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치며, 남북협력을 지향하는 민족화해위원회는 남한에 온 탈북민을 동반하기도 한다. 근래에는 평화교육에도 주력하는데, 분단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북한만 변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같이 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본당과 같은 현장에서 이뤄지는 평화교육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안타깝지만 한반도에서는 신앙인들도 쉽게 화해를 주장하지 못한다. 남북이 적대하는 현실에서는 민족의 화해를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종북’으로 몰리거나, 어떤 ‘정파’에 속하는 것으로 오해받거나 평가받을 수 있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성당에 왔는데, 왜 ‘정치’를 얘기하냐는 분들도 많다. ‘정교분리’를 하자는 것이다.

사실 ‘정교분리’는 정부(the State)와 교회(the Church) 사이의 구별을 가리킬 때 정당성을 갖는다.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인용하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는 흔하게 오역되는 성경 구절이다. 사실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와 종교는 완벽하게 분리될 수 없다. 신앙인의 관점에서도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철저히 구분하는 것은 옳은 해석이 아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성당 안에만’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가 정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세상의 권력과 결탁하거나 그 힘에 의지하려는 유혹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루카 22,26)고 성경은 가르친다.

교회의 활동을 일컫는 사목(司牧)에 대해 과거에는 ‘영혼을 보살피는 일’이라고 정의하며 사목을 오로지 성직자의 임무로 보았으나, 오늘날에는 ‘보편적 구원의 성사’인 교회가 세상과 관련을 맺는 모든 활동을 두고 사목이라 이해하고 있다. 세속의 방식과는 구분돼야 하지만, 교회는 세상의 부조리, 불의와 비평화를 묵과할 수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정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전쟁이 끝나지 않은 이 땅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평화를 위한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려면 성령이 주시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불의와 갈등이 끊이지 않는 세상 안에서 민족화해위원회가 세상과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한다.

강주석(베드로)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