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2021 대림 기획 ‘희망’ ➊희망을 심다 – 해밀학교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1-11-23 수정일 2021-11-23 발행일 2021-11-28 제 3271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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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없는 세상 일구는 학교… 희망의 씨앗 틔우는 터전 되다
가수 인순이씨 설립해 운영
모든 아이가 어떤 장벽도 없이 함께 공부하고 뛰노는 학교
이중언어부터 예술, 농사 등 다양한 분야 전인 교육 ‘강점’

다문화대안학교 해밀학교 학생들이 11월 19일 김장 준비를 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다. 다양한 이주배경의 학생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뛰노는 이곳에서는 차별도 이질감도 찾아보기 힘들다. 사진 박민규 기자

<연재순서>

➊희망을 심다 – 해밀학교

② 희망을 꿈꾸다

③ 희망을 전하다

④ 희망을 펼치다

코로나19라는 기나긴 터널을 지나며 전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희망’이라는 단어에 기대고 있다. 교회는 특히 대림 시기에 인류를 구원할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희망을 전한다. 올해 대림 시기에는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회 곳곳에서 희망을 심고 키우고 나누는 이들을 만나본다.

그 첫 번째로 가수 인순이(체칠리아)씨가 설립, 이사장을 맡아 운영 중인 해밀학교를 찾았다. 강원도 홍천군에 위치한 해밀학교는 다양한 문화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함께 생활하는 기숙학교다. 다문화 가정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이 어떠한 장벽도 없이 가족처럼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차별 없는 세상을, 누구든 희망씨앗을 심고 키워갈 수 있도록 돕는 터전이다.

■ 해밀 - 비가 온 뒤 맑게 갠 하늘

“쌤~ 김장 너무 재밌어요!!!”

오늘의 학교 행사는 김장이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 함께 김장을 하느라 분주한 가운데에서도 웃음소리만큼은 끊이지 않는다. 누구 하나 가만히 있는 학생들 없이 모두 협심해서 일사천리 김장 준비에 돌입. 학생들은 힘들기는커녕 재미있다고 입을 모은다. 뛰어놀고 싶고 하고 싶은 일도 너무나 많을 나이지만, 뜻밖에도 행동 하나하나에선 공동체성이 더욱 짙게 드러난다. 얼굴색은 조금씩 다르지만 유난히 밝은 아이들, 바로 해밀학교 학생들이다.

해밀은 ‘비가 온 뒤 맑게 갠 하늘’이라는 뜻을 지닌 순우리말이다. 다양한 배경 속에서 각자 받은 상처들도 있지만, 해밀이라는 말처럼 학교 안에서는 어떠한 구김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 시작은 인순이씨가 자신이 겪은 상처와 어둠을 이겨내면서부터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오랜 기간 고민했다. 그는 “내가 처한 배경 때문에 사춘기가 참 길었다”며 “가수로 대중들 사랑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나와 비슷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 곁에 있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학교 설립과 같은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몇 명의 아이들과 동반하고자 작은 한옥 창고를 개조해 교실을 만들었고, 이어 기숙사까지 만들게 됐다. 그는 “지금의 해밀학교는 그야말로 기적이다”며 “선한 마음을 가진 여러 은인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밝혔다.

한옥에서 시작한 작은 공동체는 이제 47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뛰어노는 글로벌 대안학교로 발돋움했다.

■ 다문화대안학교에서 국제문화 특성화대안학교로

2013년 해밀학교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 5명과 함께 한옥을 개조한 교실에서 다문화대안학교로 시작했다. 다문화 가정 학생들이 고등학교나 대학교 등 상급학교로의 진학률이 현저히 떨어지고 중도탈락률이 높다는 사실에 중등교육에 집중했다. 2015년에는 법무부 조기적응 지원센터로 선정됐고, 그해 해밀학교 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2018년에는 중학교 과정 학력 인정 대안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미인가 학교에서는 검정고시를 봐야 학력 인정이 된다. 학력 인정 대안학교로 인정받아 학생들은 검정고시에 대한 부담을 덜었다.

특히 해밀학교에서는 이주배경을 가진 학생들뿐 아니라 한국 학생들도 함께 생활한다. 교무부장 강예슬(아가페) 교사는 “사회에서는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청소년기부터 서로가 다양한 배경을 접하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게 된다”며 “소수에 대한 교육을 다수가 받아야 한다는 교육 이념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밀학교에서도 입학부터 졸업까지 3년간 학년은 정해져 있지만, 수업은 무학년제로 운영된다. 나이나 학년에 상관없이 수준별 개별학습을 통해 자신의 속도에 맞게 배워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이다. 특히 어머니나 아버지 나라에 있다가 중간에 한국으로 들어온 중도입국 학생이 많기 때문에 한국어 수업도 큰 비중을 두고 제공한다. 중도입국 학생들은 매일 2시간씩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학생들과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익혀 나갈 수 있다. 한국 학생들도 이중언어 수업을 통해 다양한 언어를 습득하고 있다. 그 결과 ‘강원도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에서 해밀학교 학생들이 3년 연속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전국 대회에서 교육부 장관상도 받았다. 이 외에도 해밀학교 학생들은 음악과 무용, 농사 등 다양한 교육 안에서 전인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다.

기숙형 학교지만 ‘학비 없는 배움터’로 운영되는 것도 해밀학교의 특징 중 하나다. 학비는 물론 기숙사비와 식비까지 모두 무상이다. 부모의 경제 상황이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 내린 결단이었다.

안만조(바오로) 교장은 “학교는 인순이 이사장님과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넉넉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학생들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는 교사들과 선한 마음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거기에 아이들도 보답하듯, 문제 될만한 학교폭력도 없고 배움의 열정도 대단하다”면서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고 마이스터고등학교처럼 입학하기 어려운 특성화 학교에 진학하는 등 미래가 매우 밝다”고 덧붙였다.

■ 희망을 심다

똑같은 상처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시작한 해밀학교는 이제 희망의 씨앗을 일구는 터전이 됐다.

러시아인 어머니를 둔 이하은(중2)양은 “7살 때 한국에 왔는데, 얼굴이 하얗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다”며 “이곳에서는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어울리기 때문에 전혀 그런 경우가 없고, 선생님들도 친구처럼 다가와 자기 일처럼 내 꿈을 지지해준다”고 밝혔다.

신소윤(중1)양은 “초등학생 시절은 일반 학교에서 보냈는데, 친구 관계나 수업 등 제한적인 것들이 많았다”며 “해밀학교에 입학하고는 다양한 문화에서 자란 친구들도 사귀고, 재밌는 수업들을 들으면서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에서 계속 같이 있으니까 밖에서 다른 외국인들을 만나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베트남에서 3년 전 중도입국한 풍태롱(중3)군은 “올해로 김장을 세 번째 하는데 너무 재밌게 하고 있다”며 “한국어는 물론이고 한국 문화에도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에 마이스터고등학교로 진학해서 전기를 전공할 예정”이라며 “훗날 내가 배운 것들을 잘 활용해서 한국에서 좋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강 교사는 “학생들이 밝고 진취적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육의 힘을 느낀다”며 “학생들 스스로가 우리 사회에 희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순이 이사장 역시 다문화 시대에서 이주배경을 가진 학생들은 희망의 존재라고 밝히며,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기를 당부했다.

“우리는 이제 다문화 시대에서 살아야 합니다. 거리에서 이주배경을 가진 아이들을 보면 따뜻한 눈으로 응원을 보내주세요. 이 눈빛만으로도 본인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겁니다. 이 아이들은 결국 우리 한국 사회의 미래로 자라나 다문화 시대에서 완충 역할을 해줄 것입니다. 우리의 따뜻한 마음으로 희망을 심는 것이지요.”

인순이 이사장(앞줄 가운데)이 지난 10월 22일 다문화 청소년들을 위한 ‘버츄얼 하모니런’ 행사에 참석해 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해밀학교 제공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