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제5회 국제학술대회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1-11-09 수정일 2021-11-10 발행일 2021-11-14 제 3269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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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시각으로 北 바라봐선 안 돼… 종교의 인도적 역할 필요
■ 북한 인권
세계 최악으로 분류되지만 종전·평화선언 추진한다면 좋은 결과 얻을 수 있을 것
유엔 제재 이후 식량 위기 상황 어린이들 죽어가는 상황에서 진심으로 도울 수 있어야
■ 종교 역할
북한 인권 문제 적대시하며 체제 붕괴하려는 접근 대신에 순수한 자비·사랑으로 다가가
생존권 차원에서 적극 도와야
한반도 평화·인권 문제 둘러싼 ‘남남갈등’ 해소 위한 소통 필요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가 11월 3~4일 개최한 제5회 국제학술대회에서 둘째 날 ‘북한 인권개선을 위한 종교의 역할’을 주제로 토론자들이 종합토론을 하고 있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소장 강주석 신부)와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강주석 신부)가 11월 3~4일 의정부교구 파주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제5회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가톨릭신문사(사장 김문상 신부)와 경기도 후원으로 열린 올해 국제학술대회에서 참가자들은 ‘북한 인권개선을 위한 종교의 역할’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펼쳤다.

주로 정치적 비판 소재로 등장해 온 북한 인권 문제에, 이번 국제학술대회에 참여한 국제사회 전문가들과 종교인들 시선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접근법이 제시됐다. 아울러 종교계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모색하는 시간도 가졌다.

■ 국제사회와 북한 인권

첫째 날에는 국제사회 시각에서 북한 인권을 다뤘다. 발제자들은 인권 자체에 대한 중요성에서는 모두 동의했지만, 북한 인권에 접근하는 방향에 있어서는 입장 차이를 보였다.

첫 번째 발제는 조지타운대학교 교수이자 예수회원인 드류 크리스천슨 신부가 맡았다. 크리스천슨 신부는 가톨릭 사회교리에 비춰 인권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인권 개념은 각 나라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양의 시각에서만 보지 말고 공동체적 성격을 띤 동양의 인권관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다만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크리스천슨 신부는 “북한 인권 실태는 세계 최악의 상황으로 분류할 수 있다”며 “북한 인권 증진은 현대 국제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제는 북한과 미국, 유엔 간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라며 “최소한 평화 선언문이라도 추진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권에 대한 미래 지향적인 전략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인맥을 쌓고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한국교회에 제안했다. 특히 민간 인권 옹호 단체와 교류하는 등 전문성을 갖추고 준비하면 언젠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 희망했다.

두 번째 발제에는 런던대학교 소속 소아스대학 한국학 연구 교수 헤이즐 스미스 박사가 나섰다. 스미스 박사는 생명권의 관점에서 북한 인권을 바라봤다. 스미스 박사는 “북한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생명권”이라며 1990년 대기근부터 현재까지 북한의 식량 위기 상황을 분석했다. 스미스 박사에 따르면 북한 농업생산은 2000년대 중반에서 2017년까지 괄목할 정도로 회복했고 어린이 영양 상태도 상당히 개선됐다. 하지만 2018년부터 다시 식량 위기가 불거졌는데, 그 원인으로 2017년 북한에 대한 유엔의 제재를 꼽았다.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북한이 석유와 천연가스 등이 끊기면서 농업에 큰 타격을 입어 식량난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즉, 북한 체제나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대외적인 변수들을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역할로, 국제 카리타스와 협력을 통한 인도주의적인 지원과 북한과의 대화 창구를 유지할 것을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조지아대학교 박한식 명예교수가 발제했다. 박 교수는 “미국 등 강대국들이 서구 가치관으로 북한을 악마화하며 고립시키고 있다”면서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치우쳐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집단으로 움직이는 독특한 북한 상황을 이해해야 하고, 관찰자로서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북한을 정상 국가로 인정해야 하며, 인권 차원에서도 북한 스스로 개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인권은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돼야 한다”며 종교도 선교를 목적으로 하지 말고 북한 어린이들이 죽어가는 상황에 대해 함께 배고픔을 느끼고 진심으로 도울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종교의 역할

둘째 날에는 종교 관점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모색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송병구 목사는 무엇보다 화해와 협력을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와 교회, 시민단체가 남북관계 증진과 동시에 북한 주민의 인권개선을 위해 옹호자와 감시자로서 역할 분담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송 목사는 “북한을 대화상대로 인정하고 평화 프로세스의 파트너로 협력하는 과정은 지속돼야 한다”며 “여기에서 형성된 신뢰를 바탕으로 북한 정부가 국제사회 인권 규범들을 학습하고 내재화하도록 일관성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인권은 결국 구체적인 한 사람의 문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교회의 역할은 지극히 작은 자에 관한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이성훈(안셀모) 공동대표가 북한 인권개선을 위한 가톨릭교회의 역할에 대해 나눴다. 이 대표는 “북한 인권은 북한 내부 문제와 남북관계, 그리고 국제 인권 문제라는 다양한 관점에서 다뤄져야 한다”면서 가톨릭교회의 역할도 국내외로 구분해 설명했다.

국내 활동으로는 ▲한반도 평화와 북한 인권에 대한 사회교리 차원의 교육 활동 ▲한반도 평화와 북한 인권 문제를 둘러싼 남남갈등 해소를 위한 소통의 활성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적극적 지원과 사회사목 ▲북한 인권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 선교 중장기 정책 수립 등을 제시했다. 국제 활동으로는 ▲국제사회의 한반도 평화와 북한 인권에 대한 인식 제고 활동 ▲한반도 종전선언 캠페인 적극 참여 ▲교황청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화외교 등을 꼽았다.

이 대표는 “가톨릭교회가 앞장서 북한 인권 문제를 잘 풀어나가다 보면, 동아시아 냉전 틀을 깨트리는 불쏘시개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종합토론

종합토론에서는 각기 다른 종교인들이 모여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댔다. 가톨릭에서는 이성훈 대표와 변진흥(야고보) 박사가 나섰고, 개신교 송병구 목사와 불교 법타 스님, 천도교에서는 경기대 노태구 교수가 패널로 참석했다.

변진흥 박사는 북한의 고유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박한식 교수 의견에 공감하며 “국제사회는 스스로를 싱싱한 사과라고 생각하면서 북한은 오렌지처럼 맛이 다르다는 이유로 썩은 사과로 취급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 인권 문제도 국제질서를 이유로 이용하지 말고 북한 주민들 스스로 풀어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반면 이성훈 대표는 보다 신중한 태도로 접근했다. 이 교수는 “북한 문제는 내부적으로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에 외부에서 개입하고 있지만,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며 “외부 제재는 또 다른 인권 침해를 유발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도적 차원에서 복음과 불경을 전하는 종교계의 지혜가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송병구 목사도 “북한 인권 문제를 적대시하고 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접근은 방어기제를 더 강력하게 갖게 한다”면서 종교가 인도적 지원에 앞장서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법타 스님은 근본적으로 독재체제에는 주권이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펼치면서도 생존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에서 인민들이 굶지 않고 하루 세끼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실천이 가장 현실적으로 도와주는 것”이라며 “종교계도 선교를 목적으로 하지 말고 순수한 자비와 사랑의 정신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노태구 교수는 3·1운동 때 적극적으로 참여한 천도교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북한 인권 문제도 외부의 힘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자주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