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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과 한국천주교회 전망에 관한 의식 조사 결과] Ⅳ. 위드코로나 시대 사목 키워드, ‘가톨릭 시민과 시노달리타스’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1-10-26 수정일 2021-10-27 발행일 2021-10-31 제 3267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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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세상을 향한 교회’에서 신앙 의미 찾으려 한다
주일미사 참례 소홀해지고 공동체 소속감 감소 현상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미 잃어가는 모습들 두드러져
교회의 세상 속 역할 수행에 응답자 97.2%가 동의하고 
생태위기 대응 캠페인과 같은 실천방안 배우는 기회 요청
교회 현실 개선에 참여하는 ‘시노달리타스’에 높은 기대감

■ 의미의 위기를 겪는 신자들

이번 설문조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결과는 팬데믹에 따른 신앙공동체의 위기 징후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20~30대 젊은 신자 층의 이탈 증가,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의 감소, 주일미사 참례 의무에 대한 생각의 감소 같은 결과는 교회 통계나 지난해 1차 조사를 비롯해 서울·의정부 등 교구에서 진행한 설문 결과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 현상이다.

게다가 팬데믹 장기화로 신앙 위기에 대한 인식이 무뎌지고 있는 점도 살필 수 있었다. ‘일상 신앙실천의 중요성에 관한 인식이 높아졌다’는 응답은 1차 조사 90.7%에서 이번에 56.6%로 34.1%p 낮아졌을 뿐 아니라 ‘온라인 신앙 콘텐츠 이용 시간’이나 ‘신앙과 교회공동체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 등의 증가를 묻는 문항에서도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이 감소했다.(9면 ‘코로나19 이후 신앙생활 변화 범주’ 그래프 참조)

특히 이번 설문에서는 신자들이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교회가 세상에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대변되는 ‘의미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또한 그리스도인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 중 팬데믹 이후에도 중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목 활동 1순위는 ‘본당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모색과 탐구’(32.4%)였고, 2순위는 ‘전례 중심에서 일상 중심의 신앙생활로 전환’(29.2%)이었다. 팬데믹으로 기존에 ‘신앙생활’이라 생각했던 전례, 신심 활동 중심의 신앙생활과 믿음의 의미를 다시 성찰하게 됐고, 그 답을 요청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10면 ‘팬데믹 이후에도 중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목 활동’ 도표 참조)

노숙인 무료급식소 안나의집 봉사자들이 팬데믹으로 인해 급식소를 열지 않는 대신 노숙인들에게 전달할 도시락을 포장하고 있다.(위) 가톨릭기후행동 관계자들이 강원도 삼척 블루파워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아래) 신자들은 팬데믹 속에서 교회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갈망을 이번 조사에서 강하게 표출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가톨릭 시민과 시노달리타스

팬데믹 속에서 의미의 위기를 겪는 신자들은 교회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갈망도 강하게 표출했다. ‘교회가 세상과 이웃을 위한 공적 역할 수행이 중요하다’는 물음에 거의 모든 응답자가 동의(97.2%)했고, ‘세상 속에서 가톨릭 신앙을 지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고 싶다’(93.6%)고 답했다.(10면 ‘코로나19 이후 가톨릭교회의 공적 역할에 관한 견해 동의 정도’ 그래프 참조)

이런 갈망은 시민이면서 동시에 신앙인이라는 ‘가톨릭 시민’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가톨릭 시민은 “교육을 통해 신자들이 교회 안으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하게 함으로써 가톨릭 시민으로 양성한다”는 목적을 둔 독일 가톨릭 성인교육에서 등장하는 개념이다. 독일 가톨릭 성인교육은 국가 공교육, 개신교 성인교육과 더불어 독일 평생교육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교육이기도 하다. ‘교회 구성원인 하느님 백성 모두는 좋은 신자이면서 동시에 좋은 시민이어야 한다’는 이 개념은 개인적 차원 혹은 교회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하는 교회 내 신앙 활동, 신앙교육, 영성운동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

그러나 신자들은 의미의 위기에 대한 응답을 교회에서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응답자들은 팬데믹 이전을 기준으로 ‘우리 성당은 지역주민을 위한 봉사, 시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문항에 27.0%만이 동의했다. 팬데믹 이후 신자들의 기대와 교회의 응답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응답자들은 생태·환경과 관련해 교회가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로 ‘환경을 위한 실천 캠페인’을 꼽았다. 이러한 생태 문제에 대한 인식의 확장은 이번 팬데믹 사태가 인류에게 끼친 영향 가운데 하나다. 현재 보편교회 차원에서도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에 따른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환경운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목 패러다임 역시 성장 담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성찰과도 접목돼 있다.

마지막으로 시노달리타스 실현이 팬데믹을 겪고 있는 교회 현실을 개선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시노달리타스는 ‘하느님 백성 전체가 교회의 삶과 사명에 관련되고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응답자의 85.6%는 ‘시노달리타스 실현 노력이 교회 현실 개선에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반면 신자들의 의견이 본당에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에 대한 견해에 37%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답해 시노달리타스 실현을 위한 첫걸음인 ‘경청’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 조사·분석 참여한 우리신학연구소 경동현 연구실장

“‘오는 신자’ 사목에만 머물러선 안 돼 지역사회 속 본당 역할 모색해볼 때”

팬데믹으로 신자 정체성 혼란

복음 정신으로 세상 살아가는

‘가톨릭 시민’ 개념 일깨워주자

“팬데믹 이후 종교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 신자들의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 고민에 충분하게 응답하지 못한 것 같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포스트 팬데믹과 한국천주교회의 전망’ 조사와 분석에 참여한 우리신학연구소 경동현(안드레아·사진) 연구실장은 “팬데믹이 끝나면 교회활동이 어느 정도 회복되겠지만, 팬데믹으로 생겨난 새로운 고민에 대해 교회가 적극적으로 응답하지 않으면 그 회복은 더딜 것”이라고 이번 조사 결과를 분석했다.

과거 팬데믹 때는 교회가 돌봄과 치유의 역할을 했지만, 그 역할이 의료시설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이전되면서 종교의 역할은 변해야 했다. 게다가 ‘교리’를 강조하면서 방역 수칙을 어기는 종교까지 생기면서, 종교의 위신이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매주 성당에 가지 못하게 된 신자들은 ‘나의 종교’, 바로 가톨릭교회의 정체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경 실장은 “조사 결과에 그런 신자들의 고민이 드러난다”며 “지표보다 본당이나 교회 일선에서 체감하는 고민은 더욱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본당과 교구는 더 이상 ‘오는 신자’만 사목하는, 안에서만 자급자족하는 신자만의 공동체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공적 역할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접근으로 ‘가톨릭 시민’이라는 개념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기존의 ‘사회사목’만으로는 그 역할과 활동영역이 협소하다는 것이다. 이미 사회사목은 ‘특수’ 사목이라는 인식이 있고, 본당과 접점을 찾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 가톨릭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시민이라는 가톨릭 시민 개념은 일상에서 신앙생활의 중요성을 느끼고, 교회의 공적 역할이 확대되길 바라는 신자들의 욕구를 해소하는 데 큰 디딤돌이 될 수 있다. 경 실장은 “교회가 지닌 장점을 갖고 본당이 자리한 지역사회 안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예를 들어 청년들이 많이 다니는 지역에서 청년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청년밥상 문간’ 같은 사목이 좋은 사례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팬데믹의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해 시노달리타스를 어떻게 구체화하는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은 미래 교회를 그려나가기 위한 과제입니다.”

경 실장은 ‘경청’도 강조했다. 특히 경 실장은 이번 설문응답자 중 1인 가구가 8%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리나라 인구 대비 1인 가구가 31.7%임을 생각하면 너무 적은 수다. 1인 가구가 교회 안에 설 자리가 적다는 방증이고, 조사가 그만큼 다양한 이들의 의견을 담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 실장은 “1인 가구만이 아니라 20~30대, 팬데믹 이전에 주일미사만 참례했던 신자들의 이야기는 더 듣기 힘들 것”이라면서 “앞으로 이들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에 관한 고민도 시급하다”고 전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