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만들자] 생명의 보금자리 ‘가정’ -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사는 가정들 (9) 노년기 - 노인 돌봄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21-10-19 수정일 2021-10-20 발행일 2021-10-24 제 3266호 18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부모님께 효도하여라.’ 정송자·김영배씨 부부 가정과 고혜선·홍성빈씨 부부 가정은 이 넷째 계명을 잘 실천하며 가정에서부터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머지않아 100세가 될 노부모와 홀로 살고 있는 86세 친정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이들 가정은 노인 돌봄을 통해 가정에서부터 어떻게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을까.

■ 정송자·김영배씨 부부 가정

연로하신 부모님 돌보며 지내는 삶 훗날 하느님 앞에 떳떳할 수 있겠죠?

정송자씨가 친정 부모님 댁에 찾아가 부모님을 돌봐 드리고 있다.

정송자씨가 친정 부모님 댁에 찾아가 부모님을 돌봐 드리고 있다.

정송자(체칠리아·69·서울 공릉동본당)씨는 매주 3회 이상 친정 부모님 댁을 방문하고 있다. 오후 7시부터 저녁 식사와 약을 챙겨 드리고 목에 가래가 생기지 않게 호흡기 치료도 해드리다 보면 금세 시간이 간다. 그러고도 잠드실 때까지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몸을 이쪽저쪽 눕혀 드리고 주무실 때쯤 함께 기도하고 돌아오면 매번 오후 10~11시가 훌쩍 넘는다. 그럼에도 직접 다녀오는 정씨나 이를 지켜보는 배우자 김영배(필립보·72)씨나 “그만하겠다”거나 “그 정도면 됐다”는 소리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생활이 벌써 10여 년째인데도 그렇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가족인 친정 노부모를 돌보는 일이 가정 내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형성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머지않아 100세가 될 노부모를 정씨가 주마다 최소 3회 이상 찾고, 이러한 정씨의 활동을 김씨는 묵묵히 지원해 줌으로써 부부의 사랑과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도 더욱 두터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씨는 “10여 년 전부터 어머니가 아프셨는데, 그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자주 찾으면서 남편에 대한 애틋함도 커졌고 남편도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 잘해주고 더 사랑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부부의 사이는 2개월 전 김씨의 아버지 ‘요셉’ 옹이 세상을 떠나면서 더욱 각별해졌다. 8년 전 아내를 여의고 간암으로 고통받던 요셉 옹은 세상을 떠나기 2달 전부터 요양원에 머물렀고, 집이 아닌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이 모습을 지켜본 부부는 아버지가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외롭게 보내시다 임종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해서든 가족이 부모를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는 인식이 더욱 확고해졌다. 그 결과 지금도 정씨는 매주 3회 이상 부모를 찾아 돌봄을 실천하고, 김씨는 이 같은 정씨의 활동을 격려하고 있다.

정씨는 “시아버지가 떠나신 후 매일 미사를 봉헌하는 등 시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말년을 외롭게 사신 모습이 자꾸 떠올라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며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 몸이 아프고 힘들 때도 있지만,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몸이 닿는 데까지 부모님을 돌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정씨는 “나중에 하느님 앞에 섰을 때 100% 떳떳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하느님이 말씀하신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고 당당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씨는 자녀들 덕분에 이렇게 오래 살 수 있어 고맙다고 부모님께서 말씀하실 때마다 뿌듯하고 기쁘다며 이같이 힘주어 말했다. “가족과 부모님이 건강하고, 저 역시 부모님을 곁에서 계속 돌봐 드릴 수 있도록 건강하게 사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자 지향, 행복입니다.”

■ 고혜선·홍성빈씨 부부 가정

가정에서 사랑과 효가 이뤄지면 세상에도 생명의 문화 형성될 것

고혜선씨와 어머니 오춘희 여사.

“내가 낳은 자녀이기 때문에 자녀들을 소중히 대하고 사랑스럽게 키우잖아요. 부모님을 돌보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86세의 나이에 홀로 살고 있는 친정어머니 오춘희(데레사) 여사를 돌보고 있는 고혜선(안나·56·서울 주교좌명동본당)씨는 “나를 낳고 키워 주신 부모님을 가족이 돌보는 일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매주 한두 차례 왕복 4시간이 걸리는 친정어머니 댁을 찾아 반찬거리를 마련해 두고 빨래와 청소 등을 하고 어머니가 병원에 가야 할 땐 함께 병원도 다니고 있는 고씨는 이 같은 일들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혼자 즐길 수 있는 시간이나 여유가 줄어들고 때론 몸도 고되지만, 자신을 포함한 1남5녀 자식들에게 베풀어 주신 부모님 사랑과 헌신을 생각하면 자신과 남매들이 하고 있는 어머니 돌봄은 너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 고씨는 “자식이 부모님을 찾아가 함께하고 관심 갖는 일은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당연하다”며 남편 홍성빈(요아킴·65)씨도 이를 적극 지지·응원해 주고 있다고 밝혔다.

특별히 고씨는 혼자 사는 친정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자신과 자녀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부부는 출가한 큰 딸과, 함께 살고 있는 두 아들 등 세 자녀를 뒀다. 자녀들은 모두 친정어머니를 보살피는 고씨와 이를 지지해 주는 홍씨의 모습을 보며 효녀·효자로 성장했다. 고씨는 “사랑한다”는 말도 자신들의 가정에서는 자연스럽다며 세 자녀 다 부모에게 살갑고 따뜻하게 말하고 챙기고 하는 이런 모습은 자녀들이 자신들이 친정어머니를 돌보는 모습을 보고 배운 것 같다고 말했다.

가정에서 뿐만이 아니라 가정 밖에서도 고씨는 홀로 살고 있는 어르신들을 돌보고 있다. 이웃 주민들 중 도움이 필요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르신들을 이따금씩 찾아 음식을 나눠 드리는 등의 활동을 하는데, 이 역시 고씨는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신앙인으로서 하느님과 이웃 사랑은 당연한 일이고, 홀로 사는 어르신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보살피는 일은 신자로서 당연한 역할”이라는 의미다. 그러면서 고씨는 “이것 역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다른 분들을 늘 돌보고 사셨던 부모님을 보며 배웠다”고 밝혔다.

요즘 시대에 고씨는 “부모님께 효도하여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이 더 강조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가르침과 달리 현대에는 가정에서 부모 사랑, 사회에서 이웃 사랑이 많이 옅어져 가고 있기 때문에 “가정에서부터 사랑과 효가 잘 이뤄져야 하고, 사회에서도 미디어나 교육을 통해 사랑과 생명의 문화 형성을 위한 가치가 널리 알려져야 한다”는 뜻이다. 고씨는 자신부터 “홀로 사는 어머니를 지금 이대로 계속 잘 돌볼 것”이라며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떠나시는 그날까지 이 ‘당연한 사랑’을 계속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