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미카엘과 실비아

정동근(모세·마산 산청본당)
입력일 2021-10-05 수정일 2021-10-05 발행일 2021-10-10 제 326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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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과 실비아는 참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다. 실비아는 신구약 전체를 다섯 번, 미카엘은 두 번이나 필사를 한 사람이다. 실비아는 레지오 단장, 꾸리아 단장을 거쳐 현재는 연령회 여성 부회장, 반장, 성가대까지 하면서 평일 미사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 미카엘 역시 사목회 시설 분과장, 레지오 단장은 물론 복사대장도 수년에 걸쳐 하고 있다. 직업이 목수여서 성당의 각종 집기는 물론, 특히 산청 지역은 공소가 많은데 가옥 수리, 내부 수리까지 그야말로 두 분은 성당이 집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얼마 전 미카엘이 교통사고가 났다. 합천에서 일을 하고 운전하고 오는 길에 중앙분리대를 받아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다. 터널을 막 빠져 나오자 사고가 났는데 그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다른 운전자가 발견해 119에 신고해서 경상대병원으로 가게 되었고, 미카엘 휴대폰을 찾아 실비아에게도 전화를 해 주었다. 미카엘의 상태는 갈비뼈 전체와 팔목이 으스러지고 골반 고관절이 두 군데나 부러졌다. 사흘 동안 깨어나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상태로 있는 그야말로 목숨만 겨우 건진 중상이었다. 수술 시간도 장장 9시간이 걸렸으니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었다.

사무장님으로부터 대략의 사고 경위를 들으면서 하루속히 깨어나기를 기도하면서도 문득 실비아가 ‘이 일로 받은 상처가 너무 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은총은커녕 이토록 가혹한 시련을 당했으니 하느님을 얼마나 원망했을까? 혹여나 이번 일로 성당을 멀리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사고가 난지 이틀이 지난 날, 나는 어머니 기일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평일 저녁 미사에 참석했는데 실비아가 제일 앞자리에서 미사를 참례하기 위해 서 있는 것이었다. 실비아와 미카엘은 전에도 평일미사 때는 항상 제대 앞 제일 앞자리에서 미사를 보았다. 미카엘의 상태가 너무 궁금했지만 미사가 시작되어 마치면 물어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미사 지향을 말씀하시는 신부님이 ‘실비아가 미카엘을 위한 감사 미사’를 봉헌했다면서 미사 중 기억해 주시라는 것이었다. 아니! 분명히 중상으로 깨어나지도 못하고 중환자실에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감사 미사가 웬 말인가? 미카엘 상태를 내가 잘못 들었나? 미사를 마치고 실비아에게 직접 들은 미카엘의 상태는 사무장님에게 들은 그대로였다. 눈물을 흘리면서 그 큰 사고에도 미카엘을 살려 주신 하느님이 너무 감사해서 미사를 넣었다는 것이었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실비아의 신앙심을 걱정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한 달 남짓 입원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는 길에 미카엘은 멀쩡한 사람처럼 평일 미사에 참례했다. 아직도 2차 수술이 남아있다면서도 나는 괜찮은데 의사가 과잉 진료를 한다면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온몸이 성한 곳 하나 없이 다 부러진 사람이 목발은커녕 지팡이 하나 달랑 짚고 나온 것이다. 의사도, 본인도, 보고 있는 우리도 정말 기적이 일어났음을 알았다.

재작년 미카엘과 실비아는 성당에서 주관한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다녀왔다. 형편이 어려워 미카엘은 실비아 혼자만 보내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새들도 먹이신 하느님께서 설마 우리를 굶기기야 하겠냐면서 두 분 다 신청을 했는데, 거짓말처럼 일이 많아져 경비를 거뜬히 마련할 수 있었다면서 순례 때 자랑을 하곤 했다.

다친 몸이 다 나아도 예전처럼 일하는 건 어렵다는데 하루 벌어서 먹고 사는 사람이 이제 일도 하지 못한다. 치료는 얼마 동안 받아야 하는지 기약도 없다. 그런데도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요새 내가 없으니 복사하는 사람들 순서가 빨라서 고생들 좀 하겠네”라고 한다. 미카엘이 주일미사와 평일미사의 절반은 맡아서 봉사했으니 당연한 걱정이었다. 실비아 역시 웃는 모습으로 2층 성가대 자리에 언제나 그랬듯이 제일 먼저 나와 앉아 있었다.

정동근(모세·마산 산청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