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융합 예술가 故 성찬경 시인 작품전 ‘사물, 아름다움의 구원’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1-08-17 수정일 2021-08-17 발행일 2021-08-22 제 3258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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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에서 태어난 작품, 물질문화를 재정의하다
버려진 물건에 숨 불어넣은 시인의 생전 작품들 전시
대량 생산·소비가 특징인 현대 문화에 경종 울려
9월 26일까지 엄뮤지엄

고물로 작품을 만들고 있는 생전의 성찬경 시인. 엄뮤지엄 제공

끊임없는 소비에 의존하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소모적 생활방식을 되돌아보게 하는 전시가 마련돼 관심을 모은다. 고(故) 성찬경(요한 사도·1930~2013) 시인의 시와 드로잉, 오브제 작업이 어우러진 아카이브 컬렉션이 바로 그 장이다.

경기도 화성 엄뮤지엄에서 ‘성찬경 : 사물, 아름다움의 구원’을 주제로 열리고 있는 전시에서는 시인이자 융합적 예술가였던 성찬경 시인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나사, 철사, 파이프, 철조각 등으로 만든 작품 ‘풍차와 싸우는 돈키호테’, 오토바이와 선풍기, 나뭇조각 등을 결합해 사람의 형상을 한 조형물 ‘무제’, 주전자 몸통에 통나무조각을 더한 ‘아이 두상’ 등을 통해서다.

성찬경 ‘무제’.

성찬경 ‘풍차와 싸우는 돈키호테’.

생전 시인의 집에는 나사 등 길에서 주워온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시인은 그런 집을 ‘물질 고아원’이라 불렀다. 버려진 물질들을 고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은 고아원장을 자처했다. 고아들은 시인의 손끝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그는 ‘물질 고아원’ 속에서 간과된 사물의 세계를 사유하며 사람, 일상, 미래의 모습을 그렸다. 때로는 당대의 모순된 사회 비판을, 때로는 낭만적인 사색을 통해 시적인 존재로서 감정의 미학을 입혔다.

성 시인은 사람에게 인권이 있듯 물건에는 물권이 있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버려진 물건을 거두는데 평생을 쏟았던 시인은 주변을 둘러싼 일상과 그 일상을 대변했던 생명이 다한 사물의 존재 가치를 ‘돋보기 관점’으로 바라봤다. 거기에서 폐기의 무가치로부터의 회생과 순환의 미를 탐구하고 이를 일상예술로 구현했다. 소탈한 은유와 위트 그리고 낭만적 응시를 통해 사물에 관한 특별한 사유를 투영했다.

이러한 시인의 철학을 바탕으로 기획한 이번 전시는 대량 생산과 소비로 특징 지워지는 물질문화의 풍경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매체와 표현방식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던 전방위 예술가의 작업 50여 점과 그의 작업을 주된 모티브로 엮은 3D 애니메이션 영상과 드로잉 벽화 작업도 소개하고 있다. 다면적 전시 구성을 통해 예기치 않은 매체의 조화와 다양성을 포용하는 입체적인 아카이브 전시를 구현한 것이다.

성 시인은 충남 예산 출신으로 서울대 영문과에 재학 중 조지훈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1966년 첫 시집 「화형둔주곡」을 발간한 이래 「벌레소리송」, 「시간음」, 신앙시집 「황홀한 초록빛」 등을 펴냈다.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장, 한국시인협회 회장, 성균관대 영문과 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월탄문학상, 공초문학상, 한국예술상, 서울시문화상 등을 수상한 작가이기도 했다. 또한 성 시인은 2011년 5월 1일부터 2012년 3월 25일까지 매주 본지에 ‘성찬경의 반투명 인생노트’를 연재하기도 했다.

‘성찬경 : 사물, 아름다움의 구원’전은 9월 26일까지 열린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할 수 있으며 코로나19 방역 수칙에 따라 예약 방문제로 운영된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관한다.

※문의 031-222-9188 엄뮤지엄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