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단테의 신곡 제대로 배워봅시다] ⑮ 연옥 산의 구조

김산춘 신부 (예수회·서강대 철학과 교수)
입력일 2021-07-20 수정일 2021-07-21 발행일 2021-07-25 제 3255호 1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정죄(淨罪)의 과정으로 원죄 이전의 상태 회복
교만·질투·게으름·탐욕 등 각종 죄 일곱 둘레길 통해 정화의 과정 거쳐
마지막으로 불의 장벽 통과하며 연옥의 속죄 끝내고 자유 되찾아

넷째 둘레길로 향하는 계단 위로 올라왔을 때 해가 지고 일행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된다. 그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로부터 죄의 유형에 따른 연옥의 정죄(淨罪) 구조에 관한 설명을 듣는다. 이는 마치 지옥 편 제11곡에서 쉬는 틈을 타 지옥의 징벌 구조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과 유사하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설교집」(96,1)에서 “어떤 사랑을 하느냐에 따라 어떤 인간이냐가 정해진다”고 했듯이, 어떤 사랑을 했느냐에 따라 연옥의 구조도 정해진다.

자연 본성의 사랑에는 언제나 오류가 없으나,

영혼의 사랑은 그릇된 대상 때문에, 또는

너무 넘치거나 모자라서 잘못될 수 있다.

(연옥 17, 94-96)

자연 본성적 사랑은 목적에 관한 것이고, 선택적 사랑은 목적 달성의 수단에 관한 것이다. 자유 의지를 가진 천사나 인간의 선택적 사랑은 잘못될 수 있다. 잘못을 저지르는 선택적 사랑의 세 가지의 형태가 연옥의 일곱 둘레길에서 정죄된다. 먼저 아래의 세 둘레길에서는 좋은 것이라 여겨진 악한 대상에 대한 사랑 즉 교만, 질투, 분노가 극복된다. 이 사랑들은 이웃의 손해를 그 대상으로 삼는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 대전」에서 말하듯, 교만은 “자신의 우수성에 대한 무질서한 사랑이다.” “교만은 타인을 격하시키면서 자신의 탁월성을 원한다.” 질투는 “타인의 선에 대해서 슬퍼하는 것”이다. “질투는 이웃이 잘 되는 것이 슬픔이 될 때 죄가 된다. 왜냐하면 이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분노는 “그것이 정당하지 못하거나 혹은 가치가 없는 어떤 보복을 위한 욕구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악한 것이며, 따라서 악습이다.”

그런 세 가지 사랑은 이 아래에서

벌 받고 있으니, 이제 잘못된 방식으로

행복을 뒤쫓는 다른 사랑을 이해하여라.

(연옥 17, 124-126)

이제 논의는 선에 대해 과도하거나 부족하여 잘못을 저지르는 사랑으로 넘어간다. 즉 네 번째 둘레길에서는 선에 대해 활기차지 못한 사랑 즉 ‘게으름의 정죄’가 행해진다. 그리고 그 위의 세 둘레길에서는 부차적 선(재화, 음식, 쾌락)에 대한 과도한 사랑 즉 탐욕, 식탐, 색탐의 정죄가 행해진다. 그러므로 지옥의 징벌 구조가 세 부분이었듯이, 연옥의 정죄 구조도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

일곱째 둘레길에서 해 질 무렵 천사가 나타나 사람보다 생생한 목소리로 시인들에게 불길 속 통과를 명령하며 노래로 격려한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불길 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을 듣자 단테에게는 화형을 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부가 다시 격려한다. “내 아들아, 여기 고통은 있겠지만 죽음은 없단다.”(연옥 27, 20-21) 물질적으로 태우는 일 없이 영적으로만 태우는 초자연적인 힘은, 아담과 하와의 에덴동산 추방 후, 생명의 나무로 가는 길목을 지키는 케루빔의 불타는 칼과 연관되어 있다.(창세 3,24) 단테는 머리카락 한 올도 잃지 않을 것이다.(루카 21,18; 사도 27,34) 그럼에도 단테는 고집스럽게 꼼짝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사부는 이 불의 장벽 너머에는 베아트리체가 있다고 말한다. 그제야 단테는 불 속으로 들어간다. 이성이 아무리 설득해도 꿈쩍도 않던 것이 사랑의 한마디에 움직여진 것이다. 랭스턴 휴즈의 ‘불’이라는 시의 한 귀절이 생각난다.

“불입니다./ 주여, 불입니다./ 불로써 내 영혼을 태우소서.” 끓는 유리 속보다 더 뜨거운 듯한 불 속을 통과하자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마태 25,34)라는 소리가 눈부신 빛 속에서 들린다. 이제 연옥의 속죄는 끝났다. 단테는 발걸음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진 것을 보고 마지막 P자가 이마에서 지워졌음을 알았다. 맨 위 계단에 이르자 사부는 단테에게 인도자로서의 자신의 사명이 끝났음을 알린다. 그들은 인류의 고향인 지상낙원에 도착한 것이다.

아들아, 너는 순간의 불과

영원의 불을 보았고, 이제는 내가

더 이상 알지 못하는 곳에 이르렀다.

내 지성과 재주로 여기까지 인도했으나

이제부터는 네 기쁨을 안내자로 삼아라.

(연옥 27, 127-131)

네 의지는 자유롭고 바르고 건강하여

거기에 따르지 않음은 옳지 않으리니

너에게 왕관과 주교관을 씌우노라.

(연옥 27, 140-142)

연옥 편의 중심주제인 자유는 마침내 마지막 부분에서 중심 초점 안으로 들어온다. 처음부터 자유를 찾아 나선 단테는(연옥 1,71) 이제 그 자유를 얻은 것이다. 단테의 의지는 자유롭고, 곧바르고, 다시 온전해졌다. 원죄 이전의 상태로 돌아온 것이다.

김산춘 신부 (예수회·서강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