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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신앙의 은인이신 신부님을 생각하며

임창순(마티아·대전 법동본당)
입력일 2021-07-13 수정일 2021-07-13 발행일 2021-07-18 제 325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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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손수 만든 교회사 자료 등을 가지고 모처럼 원로성직자이신 신부님을 뵈려고 찾아갔다. 거주지의 동과 호수가 기억이 안나 전화를 걸었다. 같이 사시는 분이 전화를 받으셨는데 신부님은 몸이 매우 않좋으셔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신부님과의 본격적인 만남은 1980년 5월이었다. 그해는 정치적 혼란기였고 매일 대학생들이 데모를 했으며, 신군부는 5월 19일자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전국 대학 휴교령을 내렸다. 대학 신입생이었던 나는 가톨릭학생회라는 동아리에 가입을 했다. 가톨릭학생회는 교구별로 대학을 묶어 연합회체제로 운영했고, 별도로 대학마다 고유활동도 하였다. 나는 연합회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찾던 중, 어느 신부님이 성서연구운동본부를 차려 성서연구강좌를 연다기에 다른 회원들과 함께 가서 5주간 듣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개신교에서 개종한 후 세례 받은지 2년도 안 된 시기였고 성경을 배우고 싶은 열망이 강했다. 열심히 배웠다.

이후 성서연구반에서 제2강좌가 있으니 들으라는 우편물이 집으로 왔고, 나중에 2강좌를 들었다. 내용은 4복음서에 나오는 각 성경구절이고 문제식으로 된 교재로 예수님 탄생부터 부활까지 주제별로 구성되었다. 두 달 가까이 열심히 들었고 공책에 적었다. 마음속에 무언가의 느낌을 받았다. 별도의 구약성서 모임반이 있어 회원들과 함께 읽은 내용을 발표하고, 많은 의견을 나누며 궁금한 것은 신부님께 질문하고 신부님은 자상하게 알려주셨다.

나중엔 색다른 방법으로 성경을 접하도록 해주셨다. 주일미사의 1독서와 2독서, 복음서를 모아 유인물에 적고 문제를 내서 집집마다 보내고 받으면, 그것을 읽고 문제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였다. 당일 연구반에 가면 각자 회원들은 성경구절을 읽고 문제에 대한 답변을 말하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을 나누었다. 토론의 마무리는 신부님께서 독서와 복음서가 전하는 의미를 연계시켜 전달해주셨다. 우리 모두는 그날그날 독서와 복음이 연결돼 있음을 알게 되었다. 끝나면 미사를 해주셨고 양형성체를 영하도록 해주셨다.

그러나 신부님은 사정상 성서연구강좌를 그만두셨다. 다음 해에 집으로 무슨 책 1권이 왔다. 성경구절을 기본으로 하여 성체조배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신부님이 직접 쓰신 책이었다. 신부님께 감사의 편지를 썼다. 신부님은 신학생 시절부터 성체신심을 가지려고 노력하셨다고 한다. 군입대 후 어느 해 크리스마스에 카드를 보냈다. 제대 후엔 신부님과 편지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슬픈 소식도 들어야만 했다. 신부님이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했다고 하셔서 많이 놀랐고, 문병을 가서 기도해드렸다. 우리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도 찾아가 기도했다.

몇 년 후 직장인이 되었고, 어느 날 퇴근 길 버스안에서 차창가 멀리 신부님이 걸어가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한 손엔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발이 불편한 상태로 걷고 계셨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랐다. 몇년 후엔 신부님이 계신 본당에 찾아가 인사를 하였다. 이후 신부님은 건강상 요양을 계속하여야 했다. 신부님이 어디에서 사시는지 알게 되어 편지를 써서 보냈다. 2006년 정말 오랜만에 직접 찾아뵈었다. 신부님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이후 몇 번 뵙다가 더 이상 가지 않았다.

그 시절 나는 성경만 배운 게 아니었다. 신앙의 참된 의미를 배웠다. 성경뿐 아니라 교회사, 이스라엘 역사, 윤리신학, 사목헌장 등 다양한 신학 분야에 관심이 생겼고, 신앙서적도 많이 읽었다. 대학 동아리에서는 학술부 쪽으로 활동하였고 한때 본당에서도 성서모임반에서 활동을 하였다.

신앙의 은인이신 신부님! 신부님은 다가오는 7월 7일 금경축을 맞이하신다. 찾아가서라도 축하드려야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주님과 성모님께서 신부님에게 은총을 내려주시리라 굳게 믿는다.

임창순(마티아·대전 법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