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보신탕을 안 먹다니, 천주교 신자 맞아?” / 김지영

김지영(이냐시오)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대우교수
입력일 2021-07-06 수정일 2021-07-06 발행일 2021-07-11 제 3253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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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천주교 신자 맞아?”

나누던 대화를 끊고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던 시선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개고기)보신탕을 먹지 않는다면서 삼계탕을 주문하자 식탁에 둘러앉은 일행이 보인 반응이다. 그 시선들이 얼마나 준엄한지….

세례를 받은 뒤 처음 이 같은 상황을 접했을 땐 마치 내 죄가 백일하에 드러나기라도 한 듯 몸이 굳을 지경이었다.

이런 적도 있었다. 200여 명의 신자가 참여한 행사 뒤끝의 점심시간. 진행자가 마이크를 잡고 안내말씀을 했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점심메뉴는 왕왕탕입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와-!”하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진행자는 이어서 ‘혹시라도’ 보신탕을 먹지 않는 형제들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대신 삼계탕을 드리겠다는 것이었다. 손을 든 사람들은 (당시의 나로서는) 놀랍게도 불과 4명이었다.

“한국에서도 천주교 신자들이 유난히 보신탕을 즐기게 된 배경이 무엇일까?” 궁금해서 자료도 찾고 주위에 물어보니 대강 다음과 같은 얘기로 정리됐다.

보신탕은 조선시대에 평민들 뿐 아니라 귀족들도 즐겨먹던 여름철 보양식이었다. 특히 사람들은 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는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개고기를 많이 먹었다. 같은 연유로 천주교 신자들이 조선시대에 박해를 받으며 산속에 공동체를 이루고 숨어살 때 개고기는 단백질의 주요공급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천주교 신자들은 더 이상 박해를 받지 않고, 주위엔 훌륭한 단백질의 영양식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신탕을 찾는다. 개고기는 고난의 시절을 버티게 해준 상징적 음식이기 때문이다. 순교 정신과 같은 한국 천주교의 정체성에 맥이 닿아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먹다 보니 바꾸기 어려운 관습으로 굳어졌다. 이런 까닭으로 보신탕을 먹지 않는 이들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거나, 아직 덜 된 천주교 신자로 보는 것이다.

보신탕을 찾는 여름철이 다시 왔다. 하지만 최근 10여 년 사이에 보신탕을 찾는 분위기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서울 시내만 하더라도 많은 보신탕집들이 간판을 내렸다. 과거엔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해외여론을 의식해 도로변과 도심에서 보신탕집들을 몰아낸 적도 있었다. 보신탕 식문화를 둘러싼 논쟁도 거세게 일었다.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게 많은 논란을 불러왔던 보신탕 식문화도 세월 따라 절로 수그러들고 있는 것이다. 세대 변화가 가장 중요한 원인인 듯하다. 오늘날의 20대, 30대 청년들은 보신탕 식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들은 강아지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문화가 훨씬 더 몸에 배어 있다. 조만간 이들이 사회적 중추 역할을 하게 될 때, 보신탕집 간판은 아예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천주교 신자들도 마찬가지다. 여름철이면 무슨 제례의식 치르듯 보신탕집을 찾던 발길들이 이젠 뜸하다.

설사 보신탕이 한국 천주교의 역사에 그 곁을 대고 있더라도 그것은 결국 하나의 관습일 뿐이다. 진리가 아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루카 21,33)고 한 말씀은 다시 정리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진리가 아닌 것은 모두 무상해 영원하지 않고 변할 것이다.”

그렇듯이, 한국 천주교 신자들의 준엄한 정체성과 같았던 보신탕 식문화도 변하고 있다. 보신탕의 퇴조를 보면, 교회의 여러 가지 현상을 생각하게 된다.

진리도 아닌 과거의 관습을 부둥켜안고 절대로 변치 않고 수호하리라는, 그러면서 나와 다른 이는 가짜이며 적이라고 배척하는 근본주의가 떠오른다. 세상의 흐름이나 타자에 대한 이해 없이 변하지 않으려는 태도, 그 맹목적인 열성은 교회 체제 유지에 도움을 주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교회가 스스로 설정한 ‘시대의 징표’를 외면하고 교회를 암흑의 동굴로 몰아가는 것과 같다.

보신탕과는 언제든 헤어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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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이냐시오)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