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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다 하느님을 만나다] (1) 청계산 하우현성당과 둔토리동굴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1-06-29 수정일 2021-06-30 발행일 2021-07-04 제 3252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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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부터 하느님 찾는 이들 품어주던 곳
1801년 신유박해 이전부터 신자들 모여 살던 청계산 자락 신앙선조들의 천혜의 은둔지
성 루도비코 신부의 사목지
박해 피해 동굴에 숨어 살며 밤낮 없이 신자들 찾아 나선 성인의 발자취 담겨져 있어

청계산은 200년도 더 전부터 신자들이 하느님을 찾을 수 있도록 품어주던 산이었다. 교우촌 자리에 세워진 하우현성당과 청계산 자락의 모습.

코로나19 시대에 산은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찌뿌둥한 몸에도 활력을 주고, 답답한 마음도 치유해주는 ‘힐링’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사실 산은 전통적으로 하느님을 만나는 ‘힐링’ 공간이었다.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을 만났고, 예수님도 기도를 위해 산을 오르곤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신앙선조들도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하느님을 더 잘 섬기려고 산을 찾았다. 이번 여름에는 산을 오르며 하느님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 신앙선조들을 품어준 산

경기도 의왕시 원터아랫길 81-6, 하우현성당을 찾으니 자연의 정취가 물씬 느껴졌다. 도심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성당 주변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청계산의 풍경과 산새소리의 화음에 자연에 푹 안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청계산 자락 하우현 인근은 이미 1801년 신유박해 이전부터 신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성당 마당에 복자 한덕운(토마스)의 성상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복자는 1800년 이 지역으로 이주해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살다 체포돼 1802년 순교했다. 또 1845년 이 지역에 살던 김준원(아니체토)이 체포돼 순교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지금도 산과 수풀로 둘러싸여 한적한 이곳은 200년 전에는 더욱 왕래가 적고 인적인 드문 곳이었다. 게다가 서울과도 멀지 않으니 신자들과의 교류도 용이하고 사제들을 찾아가 성사를 받기에도 좋았다. 하느님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하는 열망으로 가득 찬 신앙선조들이 머물기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청계산은 200년도 더 전부터 신자들이 하느님을 찾을 수 있도록 품어주던 산이었다.

하우현성당 옆에 세워진 성 볼리외 베르나르도 루도비코 신부의 성상.

■ 성인이 오르던 산

성당 옆을 보니 옛 사제복을 입은 청년의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이 지역에 머물며 사목하던 성 볼리외 베르나르도 루도비코 신부의 성상이다. 성인에게 청계산은 더욱 각별하다. 청계산 인근의 신자들을 사목하기 위해 청계산에 있는 동굴에 숨어 살면서 산을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성인은 1864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로서 사제품을 받았다. 성인은 서품을 받자마자 선교를 위해 조선으로 향했다. 그리고 온 곳이 청계산이었다. 성인은 청계산의 동남쪽, 둔토리(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인근) 교우촌과 뫼루니(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교우촌을 오가며 우리말을 익혔다. 하지만 박해자들의 감시가 심해 마을에는 머물지 못하고 산속 동굴에서 생활했다. 성인은 동굴에 머물면서 낮에는 우리말을 배우고, 밤에는 어둠을 틈타 신자들을 찾아가 성사를 베풀었다.

하우현성당을 바라보고 오른쪽을 향하니 성인이 머물던 동굴로 가는 길을 알리는 표지석이 보였다. 여기서부터 5㎞. 신발끈을 고쳐 맸다. 평지라면 간단하겠지만, 능선을 따라 높이 540m의 국사봉을 넘어야하니 본격적인 등산의 시작이다.

이제 초입을 갓 지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땀이 맺혔다. 운동부족이겠지만, 생각해보면 성인에게도 산길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다. 1849년 소신학교에 입학해서 사제가 되기까지 14년을 꼬박 공부에 매진한 성인이다. 게다가 체력 자체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는지 한때 폐렴으로 고생하기도 했고, 건강상의 이유로 선교사가 되지 못할 뻔하기도 했다.

지금 이 길에 성인의 발길이 닿았을까.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여러 갈래의 산길을 수없이 오르내렸을 성인을 생각하니 그저 산을 오르기만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묵주를 꺼내들었다. 가빠진 호흡에 기도를 실어 보내며 산을 올랐다. ‘성인은 어떻게 이런 산길을 매일 오르내린 걸까’ 하는 한숨 섞인 생각이 들 때 쯤 청계산의 봉우리 중 하나인 국사봉이 나타났다. 그리고 국사봉에서 동남쪽으로 약 1㎞가량 더 가니 성인이 머물던 곳, 둔토리 동굴을 가리키는 팻말이 나타났다.

■ 하느님을 만난 동굴

성인이 머물던 동굴이라고 하면, 교회에서 가장 유명한 동굴 중 하나가 가르멜산에서 엘리야 예언자가 머물렀다고 하는 동굴일 것이다. 하지만 볼리외 성인의 동굴은 가르멜산의 동굴에 비하면 동굴이라기보다는 바위틈새에 가까웠다.

높이는 1m가 조금 넘을까. 성인 남성은 허리를 펴고 서 있을 수도 없고, 한 두 명이 간신히 누울 수 있을 법한 비좁은 공간이었다. 게다가 위에서 물방울이 떨어질 정도로 습하고, 온갖 벌레가 들끓는 곳이었다. 얼마 전에 신자들이 청소를 했는지 거미줄이 제거되고 먼지를 쓸어낸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도저히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언제 죽음에 이를지 모르는 박해, 낯선 언어와 문화, 척박한 생활환경. 체력이 좋은 편도 아니면서 사목을 위해 밤낮 없이 산을 오르내리는 활동. 좋을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이런 환경에서 성인은 “이토록 잘 전교할 수 있는 지방에 오게 된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라며 오히려 행복해했다고 한다.

‘도대체 성인을 행복하게 했던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성인이 머물던 동굴을 살펴봤다. 동굴 안쪽에는 십자고상과 성모상, 예수성심상이 깨끗하게 차려진 기도상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제야 성인이 무엇을 위해 이 고난을 무릅썼는가를 생각할 수 있었다. 성인이 이 동굴에서 만난 것은 좁은 바위틈도, 습기도, 벌레도, 차고 딱딱한 바닥도 아니었다. 성인에게 이 동굴은, 이 산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한 터전이요, 그렇기에 늘 하느님을 만나던 곳이었다.

성 볼리외 베르나르도 루도비코 신부가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머물던 청계산 둔토리동굴.

청계산 등산로의 모습.

■ 순례와 함께 청계산 등산하기

청계산은 등산로에 그늘이 많고 정비가 잘 돼 있어 등산 초심자들도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 또 산을 좋아하는 이라면, 매봉-이수봉-국사봉을 모두 오르거나 광교산에 걸친 종주 산행도 할 수 있다.

하우현성당 오른쪽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국사봉을 지나 둔토리 동굴까지 약 2시간가량 등산할 수 있다. 둔토리 동굴은 국사봉에서 동남쪽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1㎞가량 가면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짧은 산행을 원하면 성남시 운중동 한국정신문화원 등산로 입구를 통해 약 30분만 가면 둔토리 동굴을 찾을 수 있어 원하는 등산경로에 따라 순례를 겸할 수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