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교구 지정 순례지 탐방] (11)은이·골배마실성지

이재훈 기자
입력일 2021-06-29 수정일 2021-06-30 발행일 2021-07-04 제 3252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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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첫 사제 배출한 ‘숨은 이들의 마을’
김대건 성인 세례 받은 곳이자 귀국 후 사목활동 펼친 장소
의미 남다른 김가항성당 복원
신·망·애덕 고개 순례길 구비
월요일 제외 매일 성체현시도

은이성지 김가항성당. 김대건 성인이 사제품을 받은 상하이 인근 진자샹(金家巷)성당을 복원했다.

1836년 4월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골배마실에서 살던 15세 소년 김대건은 은이공소에서 프랑스 선교사 모방 신부에게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고 첫 영성체를 했다. 김대건은 이날 신학생으로 선발돼 그해 12월 3일 중국 마카오로 건너갔다. 그는 9년 뒤인 1845년 8월 17일 상하이 인근 진자샹(金家巷·김가항)성당에서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한국인 최초 신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김대건 신부는 그해 조선으로 귀국해 은이공소에서 11월경부터 1846년 주님 부활 대축일까지 6개월여간 머물며 서울과 용인 일대 교우들을 사목했다.

‘은이·골배마실성지’(전담 이상훈 신부)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소년 시절 세례를 받은 곳이자 박해시대 천주교 신자들이 이룩한 지역 신앙 공동체의 중심지였다. ‘은이’(隱里)는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곳으로 ‘숨은 이들의 마을’을 뜻한다. 1819년 이전부터 신자들이 이주해 교우촌이 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1836년에 성 모방 신부가 기거하며 신자들에게 성사를 줬고, 그해 성 앵베르 주교에 의해 공소로 설정됐다. 은이에 살았던 인물로는 북경밀사로 활동했던 이여진(요한·?~1830), 은이공소 회장을 지냈고 병오박해 때 순교한 성 한이형(라우렌시오·1799~1846), 김대건 신부 부친 성 김제준(이냐시오·1796~1839) 등이 있다.

은이에서 3㎞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골배마실은 김대건 신부 일가가 1835년 정착한 곳이자 김대건 신부가 살던 집터가 있는 곳으로 구전돼왔다. 골배마실이라는 지명은 뱀이 많이 나오는 마을인 ‘배마실’이라 불린 동네가 산골짜기 안쪽에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골배마실은 1961년 당시 양지본당 주임 정원진 신부에 의해 갖가지 생활 도구들이 발굴되며 성지개발에 착수됐다. 이후 1997년에 김대건 신부 성상이 세워지고 새로이 단장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성지에는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았던 김가항성당이 있다. 한국교회 첫 사제성소라는 열매를 맺은 장소에 첫 사제를 배출한 성당을 복원했다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김가항성당은 2001년 상하이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철거된 원 성당을 건축 전문가들이 실측한 도면을 바탕으로 2016년 9월 복원한 것이다. 성당 앞에 설치된 기둥 4개와 대들보 2개, 동자주 1개는 진자샹성당 철거부재를 그대로 사용해 역사적 의미를 살렸다. 성당 제대에는 김대건 성인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성당에 있는 낡은 십자가의 길은 80여 년 전 용인 백암공소(현 제1대리구 백암본당)에서 사용했던 것을 가져왔다.

은이성지 김대건 신부 기념관 내부. 은이성지 제공

성당 옆에는 김대건 신부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에는 김대건 신부의 생애와 발자취를 설명한 패널과 관련 자료, 교회사 자료와 유물, 김대건 신부를 주제로 한 성상화 및 성상조각이 전시돼 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관람이 불가능하다. 기념관 앞에는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는 소년 김대건의 모습을 표현한 금속 조형물이 있어 이곳이 옛 은이공소 자리임을 알려준다.

성지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을 맞아 신자들이 성지를 찾는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행사로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후 2~4시 이상훈 신부 주례로 성체현시를 한다. 김가항성당도 이 시간에만 개방해 성지를 찾는 신자들이 전대사를 위한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순례자를 위해서는 은이~미리내성지까지 이어지는 도보순례길에 있는 세 개의 고개, 즉 신덕고개(은이 고개)·망덕고개(해실이 고개)·애덕고개(오두재 고개)에 성인의 행적을 알리는 스토리보드를 7월 중 설치할 계획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생전에 이 세 고개를 넘나들며 사목활동을 했고, 순교 후에는 그 유해가 이 고개를 넘어 미리내성지로 옮겨졌다.

성지 내 옛 은이공소 터에는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는 소년 김대건의 모습을 표현한 금속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성지 전담 이상훈 신부는 “김가항성당에서 매일 성체현시를 거행하는 것은 김대건 성인의 신앙이 성장했고 사목활동을 펼쳤던 이곳에서 성인의 영성을 함께 묵상, 체험하는 활동”이라 설명했다. 이어 “스토리보드 설치 또한 순례길을 오가는 이들에게 김대건 성인 영성을 자세히 알리려는 활동의 일환”이라며 “순례자들은 성인이 사목했고, 성인의 시신이 옮겨진 당시 기록과 지도가 그려진 보드를 보며 사목에 대한 열정으로 이 고개를 넘었던 성 김대건 신부님의 고난을 되새기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은이성지에는 현재 신자 여부와 관계없이 많은 이들이 방문하고 있다. 신자들은 성지 순례를 위해, 비신자들은 청년 김대건길을 걷고 김가항성당을 보기 위해 성지를 찾는다.

이 신부는 “은이성지를 찾는 많은 분들께 당부드리고 싶은 점은 단순한 ‘성지 방문’이 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신자라면 성지 방문 뒤 다양한 신앙 콘텐츠들을 활용해 김대건 성인의 영성을 묵상·체험하는 것이 필요하고, 비신자들은 이곳이 ‘성지’라는 점을 기억해 성인께서 어떤 분인지 알아가려는 마음가짐을 함께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훈 기자 steelheart@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