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75) 때론 눈감아 주는 것도 사랑

고유경 (헬레나·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
입력일 2021-06-22 수정일 2021-06-22 발행일 2021-06-27 제 3251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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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실수나 잘못은 누구보다 자신이 먼저 안다

최근에 어떤 공동체에서 큰 행사를 기획하며 일 처리 과정에서 한 실수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일이 있었다. 구성원의 동의 없이 예산을 초과하여 사용한 일 때문이었다. 멋지게 행사를 만들겠다는 욕심이 앞서 그렇게 했고, 나도 잘못된 일이라고 인정했다. 그런데 구성원 중 한 명이 내 잘못을 혹독하게 지적하는 것을 듣고 너무 서운하고 화가 났다. 나도 내 잘못을 인정하지만 그렇게 몰아세우니 억울하고 속상했다.

그동안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잠도 못 자고 집안일을 하나도 못 하며 일했던 것이 새삼 억울하게 다가오며 그 공동체에 정나미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느낌이 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는 나의 노력과 헌신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돈을 초과 사용한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듯 몰아세워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다. 내가 공동체에 바랐던 것은 실수를 인정하는 사람에게 어깨를 툭 치며 “애썼어, 담에 잘하면 되지 뭐”하며 감싸 주는 따뜻함이었다.

이 일을 겪고 나니 예로니모와의 일이 떠올랐다.

예로니모가 가장 속상해하고 서운해 하는 말은 “예로니모는 집안일을 하나도 도와주지 않아요”라는 나의 비난 섞인 말이다. 그럴 때마다 예로니모는 “무슨 말이야? 내가 그래도 빨래를 얼마나 열심히 개는데?”하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개기만 하면 뭐해, 제자리에 갖다 넣는 건 안 하잖아? 그리고 집안일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빨래 개는 것 하나 하면서 집안일을 한다고 말할 수 있어?”하고 따지듯 말한다. 그럴 때 예로니모의 얼굴은 순간 굳어지며 입을 다물어 버린다. 겉으로 드러내 화를 내지는 않지만 더는 나와 대화하고 싶지 않은 표정이다.

언젠가 부부 모임에서도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마시고 있던 와인 잔을 던져 버리고 싶을 만큼 화가 났다고 말하며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려는 태도로 말하는 내가 너무 밉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다시는 집안일 따위 손도 대지 말아야겠다는 다짐까지 했다고 말했다.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들어와서 좀 쉬고 싶은데도 혼자서 종일 집안일에 치여 살았을 나를 조금이라도 도와줄 마음으로 수북이 쌓여 있는 빨래를 정성껏 개었는데 그 마음을 몰라주고 더 잘 하지 않는다고 나무랄 때는 자신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고 비난만 하는 내가 너무 미웠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솔직히 ‘뭘 저렇게까지 화를 낼까? 집안일을 많이 하지 않는 건 사실이고 그걸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저렇게까지 화를 내다니 적반하장이네’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예로니모가 억울해하는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사람들의 태도 때문에 서운하고 속상한 일을 겪고 보니 그때 예로니모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집안일을 많이 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마음과 노력조차 인정하지 않고 비난만 받으니 속상하고 억울했을 것이다.

때로 상대가 실수나 잘못을 저질러도 그 사람의 의도와 마음을 안다면 그 실수나 잘못, 또는 행동이 나의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나무라거나 책임 추궁을 하는 것이 나의 권리는 아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그의 의도와 마음을 살피고 마음의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눈감아 줄 수도 있어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내서 좋을 일이 무엇이 있을까?

눈감아 준다고 해서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같은 실수나 잘못을 반복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실수나 잘못은 누구보다 자신이 먼저 안다. 누군가 그렇게 혹독하게 지적하지 않아도 충분히 후회하고 속상하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생각을 한다. 잘못을 지적할수록 마음의 문을 닫고 반발심이 생겨 관계가 더 벌어질 뿐이다. 오히려 눈감아 주는 내 마음을 느끼며 위로받고 치유되어 더 많이 사랑하기로 결심하게 될 거라 믿어야 한다.

고유경 (헬레나·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