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상)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1-06-08 수정일 2021-06-08 발행일 2021-06-13 제 3249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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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수도승, 밖으로 선교사
관상 수도회 영성 살면서 선교 소명 실천하는 생활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의 창설자인 안드레아스 암라인 신부.

기도와 공동체 생활로 관상의 삶을 살아가는 수도자들이 외국에 나가 선교활동을 할 수 있을까. 오늘날은 수도자들의 해외선교가 자연스럽게 여겨지지만, 여전히 ‘관상 수도회가 활동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안드레아스 암라인(Andreas Amrhein, 1844~1927) 신부라면 망설임 없이 “가능하다”고 답했을 것이다. 성 베네딕도 수도 규칙을 따르는 관상의 삶 속에서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수도회,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를 창설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1844년 스위스 루체른 지방에서 태어난 암라인 신부는 ‘미술 신동’이었다. 미술에 탁월한 천재성을 인정받아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에서 미술 공부를 해오던 그를 성소의 길로 이끈 계기는 1867년 파리 외방 전교회가 주관한 ‘순교자 기념 전시회’였다. 암라인 신부는 이 전시회를 통해 선교사가 되고자하는 강렬한 열망을 얻었고, 1868년부터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러던 중 과거 베네딕도회의 선교활동에 대한 강의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아 베네딕도 수도회 입회를 결심했다.

암라인 신부는 1870년 보이론의 관상 베네딕도 대수도원에 입회했고, 1872년 사제품을 받았다. 암라인 신부는 선교를 향한 열망으로 꾸준히 장상에게 외방 선교의 허락을 간청했지만, 관상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선교에 대한 허락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암라인 신부는 선교 성소에 관해 당대의 여러 학자들, 특히 성 아놀드 얀센 신부 등과 의논하면서 선교 영성을 구체화시키며 선교 수도회의 설립을 구상했다. 마침내 마오로 아빠스는 암라인 신부에게 “보이론을 떠나 포교성성에 순명해도 된다”고 허락했다. 이어 1884년 6월 29일 레오 13세 교황은 선교수도회 설립 서류에 서명하고 새 수도회에 강복했다. 암라인 신부는 베네딕도회의 영성과 선교 소명을 결합시켜 1884년 남자수도원 ‘포교 베네딕도회’를, 그리고 1885년 9월 24일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를 창설했다.

‘안으로 수도승, 밖으로 선교사.’ 암라인 신부는 이 이상을 자신이 설립한 수도회에서 구현했다. 수도영성에 따라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는 수도원은 그 지역 전체를 위한 은총의 중심이자 복음화의 원천이 된다. 또한 수도원은 베네딕도회의 수도 생활을 실현하면서 외교인들 사이에서 직접 선교활동을 하는 선교사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다.

‘하느님을 찾는 삶’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베네딕도 성인의 수도영성을 바탕에 두고 지역과 교회의 필요에 따라 교육, 문화, 복지 등 다양한 활동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암라인 신부의 영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암라인 신부는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하느님의 뜻을 이뤄서, 만사에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기 위해” 세운 집이라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