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제주교구 ‘신축교안 120주년’ 기념행사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1-06-01 수정일 2021-06-01 발행일 2021-06-06 제 3248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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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억울한 죽음 기억하며 교회와 사회 ‘화합·상생’ 다짐
 지역 사회와 동행하기 위해  심포지엄 열고 방향 모색
 교회와 사회 당시 관점 숙고
 희생된 신자와 민군 영혼 위해  황사평에 ‘화해의 탑’ 세우고  주교좌성당서 위령미사 봉헌
“오직 제주를 향한 교회 될 것”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왼쪽에서 네 번째)와 관계자들이 5월 29일 제주 황사평성지에서 ‘화해의 탑’ 제막식을 거행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교구가 지역 사회와 동행하기 위해 ‘기억과 화합’의 손길을 내밀었다.

제주교구는 신축교안 120주년을 맞아 5월 28~29일 다양한 행사를 마련, 아픈 상처로 남아있는 역사를 반성하고 갈등을 넘어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상생의 길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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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교안은 1901년 제주도에서 천주교 신자들과 민군이 충돌한 사건으로, 그해 5월 28일 제주성에 입성한 민군은 천주교 신자 300여 명을 살해했다. 흔히 ‘이재수의 난’으로 널리 알려진 신축교안은 세금징수의 폐단인 세폐(稅弊)와 천주교의 교세 확장 과정에서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한 폐단인 교폐(敎弊)의 복합작용으로 일어났다. 그동안 교회와 지역 사회는 신축교안 원인에 관해 인식 차이를 보여 왔으나, 최근 교회가 먼저 과거를 성찰하고 역사를 바로잡으며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특히 교구는 28일 오후 2시 제주 중앙주교좌성당에서 ‘신축교안, 기억과 화합’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지역 사회와의 동행을 위해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심포지엄은 교구와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신부)가 공동 주관했다. 또한 심포지엄에서는 ‘신축교안’ 당시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의 인식부터 최근까지 제주 사회가 바라봤던 관점 등 양측의 인식 변화를 깊이 있게 다뤘다.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는 심포지엄 개회사를 통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 관점에서 갈등과 충돌의 역사를 반성하며, 단순히 아픔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제주의 미래를 위해 화해하고 그 여정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주교는 “많은 이들이 교회를 위해 죽었는데, 진정 교회도 제주도 문화를 위해 죽었는가를 다시 물어야 한다”고 역설하며 “제주 문화로부터 경청하려는 자세와 진정한 화해를 통하여 새로운 복음화의 싹을 틔워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날인 29일 오후 2시에는 황사평성지에서 제주교구와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세운 ‘화해의 탑’ 제막식을 거행했다. 이어 황사평성지에서 제주 중앙주교좌성당에 이르는 ‘신축화해길’을 순례했다.

행사에 참석한 신자들은 억울하게 희생된 천주교 신자들만이 아니라 민군들과 당시 고통받은 이들을 함께 기억하며 화합과 상생을 위해 기도했다.

같은 날 오후 7시30분 중앙주교좌성당에서는 신축교안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미사를 봉헌했다. 교구가 신자뿐 아니라 신축교안 당시 희생된 지역민들을 위해 공식적으로 미사를 봉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주교는 강론에서 “그동안 신축교안은 종교와 문화, 가해자와 피해자 등을 구분하며 이분법적 논리로 인식됐다”며 “앞으로는 화합과 일치 속에 오직 제주를 향한 교회, 제주를 위한 교회가 돼야 한다는 다짐을 하며 순례길을 걸었다”고 밝혔다.

한편 교구는 2003년 11월 7일 ‘1901년 제주항쟁 100주년 기념사업회’와 함께 ‘화해와 기념을 위한 미래 선언문’을 발표하며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바 있다. 당시 교구는 지역 사회를 향해 과거사의 진실을 함께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제주 공동체’ 회복을 위해 나아가자고 다짐했다.

교구 사무처장 현요안 신부는 “당시 공동선언문 채택은 한국 근현대사 안에서 용서와 화해를 공적으로 선언하고 교회와 지역 사회가 함께 사회적 일치를 위해 노력하자고 선언한 모범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