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기경의 친구 고 최창락씨 아들 최병호(프란치스코)씨
“나누고 내어주는 세상 꿈꾸셨던 분”
항상 남을 배려하고 절제
섬김의 삶 실천하는 모습에
세상 바라보는 눈 달라져
정진석 추기경님은 제게 아버지 같은 분이셨습니다. 매년 일고여덟 번 정도 찾아뵙고 말씀을 나눴는데, 그러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정 추기경님의 삶은 한마디로 섬김과 나눔, 절제였습니다. 항상 제게 “병호야~ 나누며 살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또 하느님께 은총을 갈구하지만 말고 주님이 주신 소명을 어떻게 다할 것인지 고민하고 그렇게 살라고 하셨지요.
추기경님은 항상 한발 앞서 계셨습니다. 선친 말씀에 따르면 전쟁 끝나고 다들 자기 살 길 찾기 바빴는데, 그 와중에 추기경님은 어수선한 나라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답니다. 전쟁 중에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으며 인간 존엄성이 파괴되는 걸 보시고 이들에게 정신적 양식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셨대요. 그래서 발명가 대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풍요로움을 주는 사제가 되겠다고 결심하신 겁니다.
당신의 꿈을 포기하고 하신 이 결심은 바로 어제(선종일인 4월 27일)까지 이어지셨던 거 같습니다. 추기경님은 화려하게 겉으로 드러나시는 분은 아니지만 추기경님이 보여주신 삶은 누구든 쉽게 따라갈 수 없을 겁니다.
아버지가 들려주신 일화가 하나 생각납니다. 추기경님이 청주교구장 시절 아버지께서 찾아가 밥을 사시겠다고 했대요. 그런데 안 된다고 하셨대요. 친구라 괜찮지 않느냐고 설득해도 안 돼서 가실 때마다 교구청에서 같이 식사를 하셨답니다.
외식을 안 하시는 이유는 당신께 밥을 못 사주는 사람들이 미안해 할까봐 였대요. 당신 입장보다는 상대방 입장을 먼저 배려하신 거죠. 추기경이 되신 뒤에도 항상 스스로를 낮추시고 절제하셨는데, 그 때마다 옆에서 부끄러움을 참 많이 느꼈습니다.
추기경님을 마지막으로 뵌 건 최근 병상에 계실 때였어요. 저도 추기경님 따라 좋은 일을 하고 싶어 1년6개월 정도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머리카락을 길렀어요. 그걸 말씀드렸더니 아프신 와중에도 기도를 해주시더라고요. 제가 아니라 제 가발을 받을 소아암 투병 중인 아이를 위해서 말이에요. 나누고 내어주는 삶, 아픈 이를 위해 기도하는 삶, 이게 바로 추기경님이 꿈꾸시던 세상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