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세상의 빛] 114. 가치에 대한 성찰 - 올바른 희망이란 무엇일까 1. 행복과 희망에 대하여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
입력일 2021-04-06 수정일 2021-04-07 발행일 2021-04-11 제 3239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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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희망은 이웃과 사회를 하느님처럼 대할 때 피어난다 
「간추린 사회교리」 578항
창조주 모상으로 지어진 존재며
구원 영향 아래 놓인 인간이 희망
희망의 원천을 하느님께 두고
세상과 이웃에게 희망 증거해야

“레드, 당신을 기다릴게요. 기억해요. 희망은 좋은 것입니다. 아마도 가장 좋은 것일 거예요. 좋은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요. 이 편지가 당신에게 발견되고 당신이 건강하길 빌게요. 당신의 친구 앤디.”(영화 ‘쇼생크 탈출’ 중)

■ 희망, 기다리고 바라고

오늘은 희망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로부터 희망은 뭔가를 간절히 기다린다는 뜻으로 이해됐습니다. 특정 자연현상, 어떤 신비나 약속의 실현을 기다린다든지, 누군가 오길 고대하는 등으로 말입니다. 그 밖에도 희망은 간절한 바람을 위해 달이 차고 시간이 지나듯 인고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으로 풀이되기도 했습니다. 희망은 누구나 갖는 보편적 의지나 힘입니다. 누구든 희망할 수 있습니다. 삶이 있다면 희망도 존재합니다.

가톨릭 신앙에서 희망의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인간은 비록 유한한 존재이지만 하느님 자녀됨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죄의 용서와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희망의 궁극적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하느님이십니다. 이런 희망은 믿음과 사랑 안에서 함께 이해되며 시간과 기다림을 필요로 하고 그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고 합니다. 바로 거룩함 속에서 이웃 사랑을 위해 현세의 삶을 선하고 성실히 살아감을 통해서입니다.

■ 희망의 주체, 하느님 말씀 안에서의 인간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도 희망을 자주 언급합니다. 희망으로 미래를 바라봐야 하며(10항), 거룩한 교회가 희망의 표지가 돼야 하고(12, 60항),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는 희망을 가져야 하며(39항) 그 희망은 보편적이며(123항), 하느님의 약속이 확고한 희망을 불러일으키고(56항), 비록 세상의 모호함과 모순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통해 세상은 희망과 생명의 장소로 인식된다고 합니다.(196항)

특별히 578~579항은 ‘굳건한 희망’(a solid hope)을 제목으로 희망이 불멸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선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베풀어 주시며, 죄가 만연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선함과 희망이 세상에 존재하기에 그리스도인의 성실한 삶이 값진 것임을 명시합니다. 또한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지어진 존재이고 하느님과 성령, 그리스도의 구원의 영향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인간이 희망이라고 이야기합니다.(578항) 덧붙여 “희망의 주체인 인간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한 사람이다”라고 한다면 더 정확한 의미이겠습니다.

■ 진정한 희망을 향해

“미래에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일간지에서 본 글귀입니다. 안타깝게도 현실에 대한 적잖은 분석들은 인간과 사회의 미래를 매우 우울하게 진단합니다. 팬데믹의 장기화, 낮은 경제성장, 일자리 감소, 세상과 사회의 여러 가지 어려움들, 이를 통한 행복지수 감소가 이유입니다. 참고로 2020년 전세계 국가 중 한국의 행복지수 순위는 62위였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문제들은 개선돼야 합니다. 그러나 재차 고민되는 것은 경제가 좀 나아지고, 팬데믹이 해소되면 우리는 정말 행복해질까 하는 것입니다. 조심스럽지만 은연 중에 세상과 이웃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나만 행복하면 된다는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행복하기 위해 남들도 한다고 불의한 짓에 나도 동참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희망을 과연 올바른 것이라 여길 수 있는 것인지가 고민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희망은 하느님과 온전히 일치하는 가운데 이웃과 사회를 하느님처럼 바라보고 대하는 것이며 여기서 참된 행복이 온다고 가톨릭교회는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희망이 무엇이냐를 이야기할 때, 그 희망의 원천을 하느님께 두는 것, 또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증거하는 것, 그 속에서 내가 어떻게 희망이 될 것인지, 세상과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해 보입니다. 누구나 희망할 수 있습니다. 희망은 인간 내면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고 무엇에 근거할지가 관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근원을 하느님이라 고백하고, 이웃과 세상을 위해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표현합니다. 그것이 참된 희망입니다.

“교회는 무법의 신비가 이미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인간 안에는 넉넉한 자질과 활력 그리고 근본적인 선이 존재한다는 것도 안다. 그 이유는 인간이 창조주의 모상이요,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을 모든 사람과 일치시키신 그리스도의 구원의 영향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교리」 578항)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