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시작은 자폐성 장애(2급)를 지닌 아들 김상현(시몬·24·서울 잠원동본당)씨가 또래들보다 1년 늦게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상현씨가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으며 일기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은 상현이가 저를 가르치고 철 들게 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들의 삶이 오롯이 담긴 일기장에서 146개의 일기를 고르고, 그날 그 순간 느꼈던 것들을 함께 담아 펴낸 「아임 파인: 자폐인 아들의 일기장을 읽다」를 손에 든 엄마 이진희(젬마·52)씨의 눈이 잠시 흐려지는 듯했다.
“제 아들이 아니죠. 당신 아드님이시죠. 하느님 아들 키우고 있는데, 당신이 다 알아서 해 주시겠죠.”
아이가 6살 때, 그런 기도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나선 폭풍우 치던 바다 같은 마음이 잦아들며 평온해졌다.
초등학교 입학 당시만 해도 도무지 미래가 그려지지 않던 아들은 지금,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한다. 자동차 자율주행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회사 연구팀 명함을 달고. 혼자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에 가서 컴퓨터를 켜고 업무 지시를 받고 일을 한다. 집중력이 좋아 오차가 거의 없고, 요즘엔 다른 직원이 작업한 것을 검수하는 업무도 병행할 정도로 번듯한 청년이 됐다. 주말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전시회를 관람하는 등 평범한 날들을 보낸다.
“아이에게 이런 소박하고 평범한 나날이 오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죠. 마치 주님께서 저희 가족에게 부활의 삶을 선사하신 것 같아요.”
엄마 이씨는 십수 년간 아들이 써 온 일기장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지난날을 떠올린다. 아들의 삶이 담겨 있지만 그와 동행해 온 엄마의 흔적이 군데군데 녹아 있다. 엄마는 아이와 함께 해질녘 한강에 나가거나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노을을 바라본다. 미어캣들이 살고 있는 우리 앞에서, 또 수족관의 작은 어항 앞에서 매번 아들을 기다려 준다. 현장학습을 자주 다니는 아들 덕에 엄마는 배를 딸 때는 빙글빙글 돌려 따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 찬찬히 들여다봐야 예쁜 풍경이 있다는 것도 배웠다. 그렇게 엄마는 아이를 통해 삶의 깊이를 더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