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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파인: 자폐인 아들의 일기장을 읽다」 펴낸 이진희·김상현 모자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21-03-30 수정일 2021-03-31 발행일 2021-04-04 제 3238호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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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평범한 오늘이 저희에겐 바로 부활의 삶이죠”
이진희·김상현 지음/272쪽/1만5000원/양철북
자폐인 아들이 직접 쓴 일기장 더디지만 깊은 삶의 흔적들 담아
“위로 전하는 조그만 도구 되길”

이진희씨는 “지난 세월은 상현이가 저를 가르치고 철 들게 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자폐성 장애(2급)를 지닌 아들 김상현(시몬·24·서울 잠원동본당)씨가 또래들보다 1년 늦게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상현씨가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으며 일기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은 상현이가 저를 가르치고 철 들게 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들의 삶이 오롯이 담긴 일기장에서 146개의 일기를 고르고, 그날 그 순간 느꼈던 것들을 함께 담아 펴낸 「아임 파인: 자폐인 아들의 일기장을 읽다」를 손에 든 엄마 이진희(젬마·52)씨의 눈이 잠시 흐려지는 듯했다.

“제 아들이 아니죠. 당신 아드님이시죠. 하느님 아들 키우고 있는데, 당신이 다 알아서 해 주시겠죠.”

아이가 6살 때, 그런 기도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나선 폭풍우 치던 바다 같은 마음이 잦아들며 평온해졌다.

초등학교 입학 당시만 해도 도무지 미래가 그려지지 않던 아들은 지금,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한다. 자동차 자율주행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회사 연구팀 명함을 달고. 혼자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에 가서 컴퓨터를 켜고 업무 지시를 받고 일을 한다. 집중력이 좋아 오차가 거의 없고, 요즘엔 다른 직원이 작업한 것을 검수하는 업무도 병행할 정도로 번듯한 청년이 됐다. 주말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전시회를 관람하는 등 평범한 날들을 보낸다.

“아이에게 이런 소박하고 평범한 나날이 오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죠. 마치 주님께서 저희 가족에게 부활의 삶을 선사하신 것 같아요.”

엄마 이씨는 십수 년간 아들이 써 온 일기장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지난날을 떠올린다. 아들의 삶이 담겨 있지만 그와 동행해 온 엄마의 흔적이 군데군데 녹아 있다. 엄마는 아이와 함께 해질녘 한강에 나가거나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노을을 바라본다. 미어캣들이 살고 있는 우리 앞에서, 또 수족관의 작은 어항 앞에서 매번 아들을 기다려 준다. 현장학습을 자주 다니는 아들 덕에 엄마는 배를 딸 때는 빙글빙글 돌려 따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 찬찬히 들여다봐야 예쁜 풍경이 있다는 것도 배웠다. 그렇게 엄마는 아이를 통해 삶의 깊이를 더해 가고 있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아들의 일기장을 보며 엄마는 당시엔 미처 알지 못했던 아이의 마음을 다시 헤아리게 된다.

“그때는 제가 맞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후회스러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제가 저지른 실수와 경험들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시중에는 이미 자폐에 관한 책이 적잖이 나와 있다. 부모지침서도 있고, 자폐인을 양육하며 쓴 에세이 등도 있다. 그러나 자폐인이 직접 쓴 일기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엄마 이씨는 자신이 경험한 부활 체험을 조금이라도 나눴으면 하는 생각에 아들의 동의를 구해 책을 내게 됐다.

“돌이켜 보면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몰랐던 아이의 행동들에도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어요. 비록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다 이해할 수 없다 할지라도.”

그러한 깨달음을 얻게 해 준 분이 예수님이고 성모님이라고 말하는 이씨.

“지금껏 살아오며 ‘예수님을 많이 닮은 상현이’라는 말이 가장 큰 위로가 됐다”는 그는 “저희의 삶이 그런 위로를 전하는 조그만 도구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