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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희 대주교 선종] 추모 현장 이모저모

방준식 기자 bjs@catimes.kr,우세민 기자 semin@catimes.kr,박민
입력일 2021-03-16 수정일 2021-03-17 발행일 2021-03-21 제 3236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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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품에 영원한 안식을… 밤늦도록 이어진 추모 열기
주교좌계산성당에 빈소 마련 전국 각지서 조문행렬 줄이어
연이은 추모미사와 연도로 이 대주교 천상복락 위해 기도
사회 각계·타 종교서도 조문

3월 15일 故 이문희 대주교 빈소가 마련된 대구 주교좌계산성당에서 신자들이 고인에 대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박민규 기자

한국교회와 대구대교구의 오늘을 있게 한 큰 어른, 대구대교구 제8대 교구장 이문희 대주교가 사순 제4주일을 맞이한 3월 14일 향년 85세로 선종했다. 주일미사를 드리러 온 교구 신자들은 이 대주교 선종 소식에 깊은 슬픔을 느끼며 애도의 뜻을 밝혔다. 교구 공식 빈소는 14일 오후 5시부터 16일 오후 10시까지 대구 주교좌계산성당에 마련돼 각계 추모의 발길이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 이문희 대주교의 유해는 14일 오후 3시30분 주교좌계산성당으로 옮겨졌다. 교구 사제단은 유해를 성당 안으로 옮긴 뒤 고인 안치예식에 따라 오후 4시경 제대 앞 유리관에 안치했다.

오후 5시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주례로 주교좌계산성당에서 첫 추모미사가 봉헌됐다. 유족과 교구 사제단, 수도자, 신자들은 방역수칙을 지키며 성당으로 입장해 미사에 참례했다. 이 대주교가 안치된 주교좌계산성당은 슬픔과 기도가 함께 하며 추모물결이 끊이지 않았다. 첫 추모미사가 봉헌된 후 매일 5번의 추모미사와 함께 연도로 추모를 이어갔다. 오후 10시 이후부터는 교구 신부들이 돌아가면서 밤샘 기도를 바쳤다. 코로나19로 인해 미사는 150명, 연도는 100명으로 인원이 제한됐지만 추모 열기는 이어졌고 교구 내 모든 신자들은 각 본당에서도 추모예식에 동참했다.

15일 오후 3시 추모미사를 집전한 전 마산교구장 박정일 주교는 “이 대주교님은 한·일 주교 교류모임을 제안하는 등 교회를 위해 많은 면에서 수고하신 분”이라며 “우리 모두 그분의 뜻을 기리며 함께 기도하자”고 이끌었다.

◎… 선종 소식을 듣고 전국의 사제, 수도자, 신자들이 주교좌계산성당 빈소를 찾았다. 전 마산교구장 박정일 주교는 14일 오후 유리관에 안치된 이 대주교의 모습을 보며 깊은 슬픔에 잠겼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총대리 장신호 주교의 안내를 받으며 빈소를 찾은 박 주교는 신자들과 함께 연도를 바쳤다.

사회 각계 조문도 이어졌다. 14일 오후 대구가톨릭대학교 우동기(라파엘) 총장과 류성걸(요셉) 국회의원,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이 빈소를 찾아 이 대주교의 선종에 애도의 뜻을 표했다. 15일 오후에는 청와대 참모들과 권영진 대구시장도 직접 빈소를 방문해 조문하고 조 대주교에게 애도의 뜻을 표했다. 청와대 김제남(엘리사벳) 시민사회수석은 “안치된 이 대주교님 표정이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며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시길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권영진 대구시장도 “이 대주교님은 대구의 큰 어른이셨다”며 “함께 마음 모아 기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동화사 주지 능종 스님도 빈소를 찾아 반야심경을 봉송하며 이문희 대주교를 추모했다.

14일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가운데)와 장신호 보좌주교(왼쪽 두 번째)가 故 이문희 대주교의 안치예식 중 기도를 바치고 있다. 사진 방준식 기자

15일 전(前) 마산교구장 박정일 주교 주례로 故 이문희 대주교 추모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사진 박민규 기자

16일 오전에도 이 대주교를 추모하기 위해 많은 신자들이 빈소를 찾았다. 사진은 발열체크를 위해 길게 줄을 선 신자들. 사진 박민규 기자

◎… 16일에도 조문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빈소가 마련된 주교좌계산본당 신자뿐 아니라 타 본당 신자들도 한걸음에 달려와 애도를 표했다.

이판연(루시아·주교좌계산본당)씨는 “아들이 수사인데 이 대주교님을 많이 존경했다”며 “생전에 좋은 기억들이 떠올라 슬프지만, 천상복락을 누리시길 기도한다”고 밝혔다. 김진식(토마스·대봉본당)씨는 “이 대주교님과 40년간 인연을 이어왔다”며 “어린이 주보나 주일학교 교재를 한국교회 최초로 만드는 등 주일학교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특별했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약자들에 대한 사랑이 특별한 만큼 좋은 곳에서 편히 쉬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10시 추모미사를 주례한 이창수 신부(고성본당 주임)는 강론에서 “이 대주교님은 교회 내외적으로 많은 일들을 하셨지만 당신 뜻대로 되지 않은 일들도 많았다”며 “하지만 그때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느님께 맡기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하느님만을 굳게 믿는 신앙인으로서 이웃들에게 내어주는 사랑의 사람이 되자”고 당부했다.

◎… 이 대주교를 가까이에서 봐온 이들도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추도 메시지를 전했다. 이들은 특히 이 대주교가 생전에 강조했던 ‘사랑’의 정신을 되새겼다.

대구 통합의료진흥원 전인병원 원장 손기철 신부는 “2018년 3월부터 2년 가까이 우리 병원에 입원하신 이 대주교님을 모셨다”며 “이 대주교님은 입원하신 동안에도 항상 교회와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셨고, 다른 환자들과 직원들에게도 웃으며 편안하게 대해주셨다”고 말했다.

한국평신도 사도직단체협의회 손병선(아우구스티노) 회장은 “이 대주교님께서 한국교회와 대구대교구에 큰 업적을 남기셨던 점들을 기억하며 주님 품에서 영면하시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대구대교구 평신도위원회 이동구(마티아) 총회장은 “이 대주교님은 다른 이들을 자기처럼 사랑하라는 뜻을 가진 ‘여기애인’(如己愛人) 정신을 살린 단체 ‘여기회’를 만든 분”이라며 “그 신조처럼 만나는 신자들 모두 편안하게 해주고 배려하며 사랑을 나눴다”고 회상했다.

대구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김문식(프란치스코) 회장 직무대행은 “평신도들에게는 인자하신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기에 지주를 잃어버린 것 같은 마음”이라며 “영원한 복락을 누릴 있도록 기도하겠다”고 마음을 모았다.

(사)한국여기회 권오광(다미아노) 회장은 “개인적으로는 이 대주교님이 건강이 좋지 않을 때 만나 뵀었지만, 그 와중에도 여기애인 정신인 이웃 사랑을 늘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한국떼이야르연구회 정진주(미카엘라) 회장은 “이 대주교님은 떼이야르 신부님 사상과 생애를 알리려고 가장 많이 애를 쓰신 분”이라며 “ 과학과 신앙을 접목한 어려운 내용이지만 신자들 눈높이에 맞게 쉽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항상 편안하고 소탈하게 대해주셨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덧붙였다.

1978년부터 이 대주교 운전기사를 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최상렬(도마)씨는 “이 대주교님은 식복사도 두지 않고 본인이 직접 요리해서 드시는 등 자기관리가 아주 철저하신 분이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평소에는 옷도 거의 없고 낡은 차를 탈 정도로 소탈하고 검소한 분이셨다”며 “하느님 품에서 천상복락을 누리시길 기도한다”고 고인을 기렸다.

방준식 기자 bjs@catimes.kr,우세민 기자 semin@catimes.kr,박민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