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60) 빛으로 새로 태어난 나의 남편

이성애(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
입력일 2021-03-09 수정일 2021-03-09 발행일 2021-03-14 제 3235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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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시간마저도 허투루 쓰시지 않는 하느님
하느님께서 나를 이렇게 작업하지 않으셨다면
늘 불만스런 시선으로 교만에 쌓인 채 
한심한 세월만 보내다 생을 마감했을 텐데
주님께서 잊지 않으시고 새로 태어나게 해주셨으니
매 순간이 감사 덩어리지

며칠 전 어린이집 원아들의 졸업식이 있었다. 길게는 3년, 짧게는 2년을 함께한 원아들과의 이별은 언제나 낯설고 익숙하지가 않아 졸업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마음 한편이 아리어 온다. ‘함께할 때 더 많이 웃어 주고 안아 줄 걸…. 더 많이 눈 맞추며 네가 최고라고 말해 줄 걸….’하는 아쉬움 속에서 손 카드를 쓰며 주님께 한 명 한 명의 축복을 빌었다.

어린이집의 특성상 졸업 준비와 새 학기 준비로 2월과 3월이 가장 바쁘다. 그러다 보니 퇴근이 늦어져 기다리고 있을 남편에게 미안해 전화를 하면 “내 걱정은 왜 해? 내가 애냐? 너라도 저녁은 꼭 먹고 일해야 하는데…. 피곤하지?”하고 자꾸 나를 걱정한다. 그 걱정이 익숙하지 않아 “늦게 퇴근해서 요한씨 혼자 저녁 차려 먹어야 하는데 짜증이 안 나? 진짜 내 걱정하는 것 맞아?”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그럼 당연히 걱정되지~ 밥도 잘 못 챙겨 먹을 건데”라는 대답을 듣는 순간 진짜 하느님의 신비를 체험하며 감동을 받는다.

남편은 건강할 때도, 뇌출혈로 편마비가 왔을 때도 항상 본인의 감정만이 최우선이었다. 3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고 또 1년 후 넘어져 고관절 삽입 수술을 하여 재활하는 동안, 주님께서는 이렇듯 남편을 새로 만들고 계셨다. 몸은 불편하지만 순간순간이 너무 감사해 본인도 모르게 성호를 그으며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사랑하고 고맙습니다”라며 하루에도 몇 번을 고백하게 된다고 웃음을 짓는 남편에게 “무엇이 그리 감사해요? 장애를 가지게 되어 불편함도 많은데, 왜 몸이 성할 때 보다 지금이 더 감사할까?”라고 질문한다.

“하느님께서 나를 이렇게 작업하지 않으셨다면, 난 어둠에 갇혀 늘 불만스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교만에 쌓인 채 한심한 세월만 보내다 생을 마감했을 텐데, 주님께서 나를 잊지 않으시고 새로 태어나게 해주셨으니 매 순간이 감사 덩어리지”라고 마음을 다해 대답한다.

남편은 아프기 전에는 틀에 박힌 직장 생활은 본인과 절대 맞지 않는다며 자영업을 했다. 하지만 작년 가을부터 장애인 구직 활동에 바쁜 시간을 보내며 많은 교육에도 참여하는 남편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바쁘게 운전하고 다니는 남편이 안쓰러워 “왜 굳이 남들 퇴직할 나이에 구직 활동을 하러 다녀요? 힘들지 않게 쉬었으면 좋겠어요”라는 마음을 전하니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이 건강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직장 생활은 나랑 맞지 않는다고 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교만했던가를 깨달았기에 겸손한 마음으로 아주 기쁘게 구직 활동을 하고 있으니 마음 쓰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나를 다독거린다. 그리고 얼마 전 금액은 적지만 몸이 불편한 상황에서 처음 번 돈이니 나보고 알아서 좋은 곳에 쓰라며 어색하게 건네주었다.

예전엔 불우 이웃 돕기를 하자고 손을 내밀면 “내가 더 불우하다, 남들 도우지 말고 가까이에 있는 남편이나 도와라”했던 남편이었기에 봉투를 받고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나의 우는 모습에 남편도 가슴이 먹먹한지 둘이서 한참을 그렇게 소리 없이 함께 울었다. 3년이 넘는 힘들었던 지나온 시간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그 힘든 시간들은 우리 가정을 바로 세우시기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셨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 부부는 한없이 자비하신 하느님께 마음 모아 감사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남편이 용기 내어 나에게 물었다. “갑자기 장애를 가진 남편이 되었는데 아내로서 속상하거나 남의 시선이 부끄럽지 않냐?”라고. 나는 남편을 바라보고 대답했다. “난 편마비로 몸이 불편한 지금의 요한씨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해요. 왜냐하면 지금의 이 모습은 하느님께서 계획하셨던 요한씨의 모습이니까요! 이렇듯 소중한 하느님의 아들을 내가 아내라는 이유로 부끄러워한다면 난 하느님께 사랑받을 자격이 없죠. 오히려 남편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까지 들어요. 나는 요한씨처럼 이렇게 못할 것 같아서요.”나의 대답에 요한 세례자가 환하게 웃었다. 요한 세례자에게서 환한 빛이 났다.

하느님의 아들로 몸과 마음이 강건하게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이성애(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