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실천하는 평화의 모습 / 박천조

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21-02-23 수정일 2021-02-24 발행일 2021-02-28 제 323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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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021년은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 두 분이 탄생하신 지 20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국 천주교회 첫 한국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님과 땀의 순교자인 최양업 신부님의 삶을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 실천할 것인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지속됩니다.

한 달 전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으로부터 한 통의 고마운 편지를 받았습니다. 어르신의 글에서는 한국전쟁, 참전, 피난, 가난과 같은 현대사가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지나갔습니다. 글 속에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에 대한 이해와 함께 걱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가 화해와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쪽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몸소 그 세월을 겪으셨기에 북쪽의 모습을 제대로 인식해야 하지 않은가라는 애정 어린 말씀이셨습니다.

우리가 북쪽과의 화해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신앙적인 측면과 정치경제적인 측면을 함께 고민해 봅니다. 제가 화해를 바라는 이유는 첫째, 일상적 평화가 계속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이 평온이 깨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누군가와 계속 갈등하고 싸워야 하는 것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없습니다. 이는 북쪽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둘째, 신앙적 지평이 넓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함께 신앙공동체를 형성했던 북쪽 형제들을 기억하는 것은 신앙적 측면에서도 필요합니다. 우리 방식이 아닌 그들 눈높이에 맞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셋째, 화해를 통해 서로가 더 큰 이익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대적 관계였던 나라들이 각자의 국익을 위해 기존 관계를 바꾼 사례는 많습니다. 19세기 영국 수상 파머스톤의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 오직 영원한 것은 국가의 이익이다”라는 말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신앙의 지평을 넓히는 것과 관련해 저는 개신교 신자들의 활동 모습이 떠오릅니다. 국내외의 정성을 모아 연변과학기술대와 평양과학기술대를 만들고 실제 외국국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그쪽에서 가르쳤던 모습. 개성공단 기업에 자체 기도공간을 만들고 남쪽 신자들이 열심히 활동했던 모습. 적극성이 우리와는 차이가 있고 개신교 내부에도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신앙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그분들의 활동적인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가톨릭 사회교리에 충실하기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함께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큰 일을 하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충만한 한 해입니다. 큰 결과물은 정치지도자들이 만들어 가더라도 화해와 평화의 흐름은 대중이 만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배의 키와 같은 역할은 화해와 평화를 지향하는 신자들의 방향성에 달려 있습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