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56) 첫사랑처럼 설레는 그리움! 나의 꾸르실료

이성애 (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
입력일 2021-02-02 수정일 2021-02-03 발행일 2021-02-07 제 3231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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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사랑을 전하기 위한 ‘기분 좋은 희생’
3박4일 봉사하러 왔으니 청소가 되어 있고, 
깨끗한 환경은 그저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당연한 일상이 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애쓰셨던 분들이 계셨음에 순간 마음이 숙연해진다

경남 양산에 위치한 정하상 바오로 영성관은 70% 이상 꾸르실리스따들의 ‘빨랑카’로 세워진 교육관이다. 그러기에 정하상 바오로 영성관 입구에 들어설 때는, 자랑스러운 선배 꾸르실리스따들처럼 되고 싶은 마음과 후배 꾸르실리스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 자신이 되어야겠다고 매번 다짐하게 된다.

해마다 영성관에서는 꾸르실료 교육이 연 10회 이상 실시된다. 이곳에서는 꾸르실료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선배 꾸르실리스따들과 본당 간사님들의 기분 좋은 희생으로 1년 내내 꾸르실리스따들로 북적거린다. 그야말로 활기 넘치는 선물 같은 장소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2월 제426차 자매 꾸르실료를 끝으로 정하상 바오로 영성관은 그 누구도 찾아오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침묵의 사계절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다. 그동안 부산교구 꾸르실료 주간단 회의와 꾸르실료 한국협의회 주간단 화상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5인 미만으로 구성된 주간단들은 마스크 착용과 개인 방역을 철저히 하고 영성관 문을 두드린다.

나는 이렇게 주간단 회의가 있는 날이면 그 전날부터 들뜬 마음에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른 아침 준비를 마치고 1시간30분 넘게 소요되는 대중교통 속에서도 묵주기도를 바치며 영성관으로 향한다. 그 시간은 정말이지 세상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소중한 시간이다.

일찍 도착해 진달래 만개한 뒷산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내려올 때면 ‘아! 천국이 이런 곳이구나’라고 느끼며 기쁨에 가득 차 성가를 부르며 산을 내려온다. 한여름 주말에는 신부님과 함께 다양한 모종을 심었던 결실들을 수확해야 하기에 하루가 무척 짧다. 꾸르실료가 실시되면 참가자들과 봉사자들에게 드리려고 고랑마다 심어 놓은 싱싱한 고추와 상추, 깻잎도 따야 하고 서로 키 자랑을 하듯이 쑥쑥 자라난 옥수수도 수확해야 한다. 얼굴이 빨갛게 익는 줄도 모르고, 한 손은 옥수수를 따고 한 손은 모기를 퇴치하며 참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지만, 한 바구니 가득히 채워서 들고 올 때는 세상 다 가진 아이마냥 너무나 신나고 즐겁다.

그렇게 수확할 것들을 다 정리하고 나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78개의 객실과 화장실, 2층 강의실과 3층 성당 등에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음을 틈타 산속의 벌레들이 그들의 영역 확장을 위해 침범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하루빨리 꾸르실료 교육이 실시되길 간절히 기도하는 바람으로 78개 객실을 환기시키며 먼지 청소를 하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객실 욕실의 배수관 고장을 예방하기 위해 변기 물도 내려 주고, 수도꼭지도 일일이 틀어 놓는 일들을 하다 보면 온몸이 땀에 범벅되어 물에 빠진 생쥐 같은 내 모습에 웃음이 난다.

3박4일 봉사하러 들어와 건물을 이용할 때는 왜 몰랐을까? 봉사하러 왔으니 청소가 되어 있고, 깨끗한 환경은 그저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당연한 일상이 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애쓰셨던 분들이 계셨음에 순간 마음이 숙연해진다. 세상에 어느 것도 당연한 것은 없음을 깨닫기에 비록 힘들고 땀이 비 오듯 흐를지라도 소명 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청소를 한다. 코로나19가 종식되어 꾸르실료가 실시될 때 참가자들이 기분 좋게, 쾌적한 분위기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매주 토요일이면 사무국 임원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한 명 한 명씩 번갈아 가며 방문해 땀 흘려 작업한다.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마법에 걸린 것처럼 도착해서는 신부님께서 직접 내려 주시는 향 좋은 커피 한 잔으로 에너지를 충전한 후, 수건 한 장을 목에 두르고, 무릎까지 자란 풀들을 베어 내고, 성모상 앞의 울창한 나뭇가지로 인해 숨겨져 있던 계단도 다시 나타나게 해준다. 이렇듯 꾸르실료 교육은 1년째 멈춰 있지만,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우리에게 꾸르실료는 첫사랑처럼 설레는 그리움으로 매 순간 활동하고 있다.

이성애 (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