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명동밥집 도시락 기획한 이욱정 (주)요리인류 대표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1-02-02 수정일 2021-02-02 발행일 2021-02-07 제 3231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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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이가 더 어려운 이 도우며 진정한 ‘상생’ 이뤄”
힘든 골목식당 주인들이 
노숙인 위해 도시락 제공 
내용 담은 이 PD 방송에
대기업이 후원에 나서

이욱정 PD는 “세례명인 프란치스코 성인의 뜻을 처음으로 실천하게 돼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뜻을 실천할 수 있어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지난달 22일 개소한 노숙인을 위한 무료급식소 ‘명동밥집’ 도시락을 기획한 ‘요리인류’ 대표 이욱정(프란치스코) PD는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또 “쉽지 않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마을밥집의 선행은 오늘날 더욱 빛난다”며 “살면서 처음으로 세례명에 걸맞은 일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로 밥 먹을 곳이 줄어든 노숙인에게 전달된 이번 ‘희망의 도시락’은 SK가 이욱정 PD의 다큐멘터리 ‘이모네 밥집 희망가’ 방송 이후, 명동밥집을 찾는 노숙인들에게 회현동 상인들의 도시락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하면서 성사됐다. 코로나19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울 회현동 골목식당 상인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많은 이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이 PD는 SK와 함께한 이번 프로젝트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회현동 식당뿐 아니라 쌀집, 정육점 등 관련 가게들도 덩달아 살아나고 있다”며 “식당 주인들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고 덧붙였다.

“대기업과 골목식당, 노숙인 이 세 그룹이 서로 힘이 되는 진정한 의미의 상생이 가능해졌어요. 단순히 여유 있는 기업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방식을 넘어, 생계가 어려워진 골목식당 주인들이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고 기업이 그것을 후원하는 방식이죠.”

하지만 골목식당의 도시락 개발이 순조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주로 찌개와 반찬 등으로 이뤄진 가정식 백반 식당이라 포장이나 배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많았다. 일단, 각 식당의 인기메뉴를 도시락 반찬으로 개발해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도시락 품평회도 하고 시범 판매도 하며 반응을 살폈다. 다행히 도시락은 반응이 좋았고 침체됐던 골목에도 활기가 돌아왔다. 그러면서 모두가 서서히 자신감을 되찾았다.

앞으로 그는 소외계층을 도우면서도 지역사회와 상생할 수 있는 이런 프로젝트를 더욱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실제로 SK그룹 여러 계열사들이 도시락 후원을 하겠다고 나서 이번 달부터 강동구청, SK네트웍스, 요리인류가 함께 서울 길동에 있는 취약계층을 위해 ‘희망의 도시락’ 배달을 나서기로 했다. 또 매일유업 지원을 받아 지역의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피자를 전달하는 ‘희망 피자’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1994년 KBS에 입사한 그는 다큐멘터리 ‘누들로드’, ‘요리인류’ 등 히트작을 탄생시키면서 한국방송대상 작품상 부문 대상, 백상예술대상 TV부문 교양 작품상 등을 받았다. 2019년 KBS를 퇴사했으며, 현재 요리를 통해 도시재생을 추진하는 소셜벤처 ‘요리인류’ 대표를 맡고 있다.

이 PD는 미래에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재생’을 꼽았다. 18년 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도시재생에 관한 다큐를 제작한 그는 오래된 도심의 창고나 도축장, 공장 등을 철거하지 않고 원형을 그대로 살리며 그곳을 문화기관이나 시설로 재생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사람들이 가진 열정과 노하우는 재생돼야 한다”며 “이제는 과거의 일자리가 사라진 자리를 채울 만한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대”라고 강조했다.

“이제까지는 만들어서 쓰고 버리는 인스턴트 철학으로 환경을 착취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랬을 수 있겠죠. 도시 재생은 단순한 건물 재생을 넘어서서 그 마을에 살던 사람과 공동체를 재생합니다. 도시의 재생이기도 하고 환경의 재생이기도 하며 인간관계, 일자리의 재생이기도 합니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