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형제의 뒷모습
“도시락을 하나씩 받은 사람들은 차가운 거리로 돌아갔다. 나는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노숙인을 위한 무료급식소 ‘명동밥집’ 개소 이틀 전에 현장을 방문한 김훈(아우구스티노) 작가는 일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리고 ‘명동밥집’이라는 네 글자가 깊은 울림을 울린다고도 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명동밥집에 왔다가 돌아가는 노숙인들의 뒷모습에서 어떤 뭉클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1월 22일 성당 마당에는 우리의 가난하고 소외된 형제들이 밀려왔다가 다시 사라졌다.
당초 이날 오후 2시 행사가 끝난 뒤 3시부터 도시락을 전달할 예정이었지만, 이미 행사 시작 전부터 옛 계성여중고 운동장에는 노숙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이들은 봉사자들의 안내에 따라 안쪽부터 줄을 섰다.
이들의 삶에 담긴 사연을 모두 알 수는 없었지만 도시락을 받아간 이들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했다. 침낭이나 담요, 배낭 등을 잔뜩 메고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베레모를 쓰고 잠시 외출 나온 여느 노인 같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몸이 아픈 동생을 데리고 온 20대 형제도 있었고 아픈 아들을 데리고 함께 와서 도시락을 받아간 부자지간도 있었다.
도시락을 받아든 이들은 내려왔던 언덕길을 다시 줄지어 올라갔다. 한 손에 흰 봉지를 들고 올라가는 이들의 축 져진 어깨에서 도시락의 무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그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전해졌다.
언덕 중턱에서는 잠시 쉬어가며 도시락 봉지에 든 음식을 꺼내 배낭에 하나 하나 넣는 노숙인 무리도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우리가 외면했던 ‘우리 형제’들을 향한 책임감이 다시금 가슴 깊은 곳에 뭉클하게 전해졌다.
■ 명동 한 복판에서 피어난 사랑
이날 행사에는 염수정 추기경과 교구 주교단을 비롯해 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홍보위원회 부위원장)와 교구 사회사목국 국장 황경원 신부, 김정환 신부, 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이광휘 신부,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SV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염 추기경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한 우리의 ‘책임’을 강조했다. 염 추기경은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앞에 한 형제이고 가족”이라며 “나태와 갈등이 심화되는 문화, 무관심과 이기적인 문화를 이겨 내고 서로 돌보며 살아가자”고 호소했다. 이어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여정에 있는 우리는 모두 ‘영적인 노숙인’”이라며 “우리가 하느님의 가족으로서 서로 아끼며 살아가자”고 당부했다. 또 유난히 추운 이번 겨울, 우리의 따듯한 마음까지 차갑게 식어 버리지는 말아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축복식이 끝난 뒤에는 도시락을 전달하기 위해 모두 분주하게 움직였다. 먼저 식당에서는 백광진 신부(서울대교구 안식년)와 봉사자들이 도시락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국을 퍼 날랐다. 유경촌 주교와 봉사자들은 흰 천막 아래에서 봉지에 도시락과 간식 등을 재빠르게 담았으며, 염 추기경은 일일이 노숙인들에게 모두의 사랑이 담긴 도시락을 전달했다. 도시락을 건네 받은 한 노숙인은 “신부님 최고!”를 외치며 미소 지었다.
이날 전달한 259개의 도시락은 SK의 ‘소상공인 온기(溫氣) 배달 프로젝트’ 지원으로 마련됐다.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명동 주변 지역 소상공인이 만든 도시락을 주문해 노숙인 등 취약계층에 나눠주는 프로젝트다. 앞서 본부는 1월 6일부터 매주 수, 금, 주일 오후 3시에 옛 계성여중고 운동장에서 노숙인에게 도시락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까지 매 회 150여 명에게 도시락을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