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67) 형제애는 나의 배우자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01-05 수정일 2021-01-06 발행일 2021-01-10 제 3227호 1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며칠 전, 내가 사용하는 휴대폰 통신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고객님, 오랜 동안 00통신을 이용해 주셔서 … 고객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기존의 핸드폰을 새 기기로 바꿔드리고자 합니다 … 대리점에 가셔서 바꾸시기 바랍니다.”

‘3년을 넘게 쓴 내 휴대폰을 새 걸로 바꿔 준다고, 설마!’ 그래도 그 다음 날, 나는 그 통신사의 대리점을 찾아 갔더니, 점장 역시 나에게 축하드린다며 새로운 휴대폰으로 교체해 준다고 말했습니다. 순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평소 좋은 삶을 잘 살지 못한 나로서는 과도한 친절과 배려가 부담이 됐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의 배터리가 2년이 넘자 너무 빨리 닳고, 어떤 자료를 찾을 때마다 영상이 자주 끊기는 현상 때문에 불편을 경험했기에, 새로운 휴대폰으로 바꿔 준다는 말에 승낙을 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처음의 전화통화에서 설명해준 것과는 달리 점장은 새 휴대폰의 기계는 원래 내가 쓰던 회사의 제품이 아니고, 처음 넉 달 동안은 핸드폰 요금이 오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기계에는 워낙 무지했고, 휴대폰 사용 역시 전화, 문자, 검색 기능 밖에는 할 줄 모르는 나는 점장이 하는 말에 미심쩍어 고개는 갸우뚱거렸지만, 그래도 ‘잘 해주겠거니’ 하고 모든 절차를 따랐습니다.

새로운 휴대폰을 받고 간단하게 조작하는 방법을 익힌 후, 특히 카메라 성능이 좋은 것을 보고 혼자 히히히 거리며 수도원에 돌아왔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함께 사는 후배 신부님이,

“강 신부님, 뭐 좋은 일 있어요?”

나는 그 신부님에게 미주알고주알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모두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그 신부님 얼굴은 어두워졌고 마지막에는 인상을 찡그리며…

“강 신부님. 꼭 낚인 것 같아요. 휴대폰 제품이 어디 거예요?”

그 신부님은 새로 바꾼 내 휴대폰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자신의 휴대폰으로 뭔가를 검색을 했습니다. 그러더니 대뜸,

“아니, 이거 공짜폰 같은데. 요금만 잘 내면 그냥 공짜로 바꿔주는 그런 폰 있잖아요. 그리고 신상품도 아니고, 이거 작년 제품인데, 그리고 회사 제품도 바뀐 것 같고….”

그 신부님 오후 내내 저녁때까지 나에게 휴대폰 기기 변경 잘못했다고 잔소리를 하고, 타박을 했습니다. 그날 나의 감정 상태는 하루 종일 배우자에게 바가지를 긁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새로 바꾼 휴대폰과 기존에 쓰던 휴대폰이 제조사가 달라 어떤 기능이 서로 연동이 되지 않는 관계로 중요한 문서를 볼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계속 바가지를 긁히던 중에 바꾼 휴대폰에서 기존의 문서를 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자, 후배 신부님에게 그 말까지 하면 더 바가지를 긁힐까봐 말을 안 하고 있었는데, 신부님이 먼저,

“강 신부님, 휴대폰 제조사가 다르면 연동이 되지 않아 문서를 확인할 수 없을 텐데요!”

‘아뿔싸’ 후배 신부님에게 문서 기능이 안 되는 걸 들켜버렸습니다. 신부님의 타박은 더 심해졌고, ‘배우자에게 바가지 긁히는 기분이 이런 것이로구나!’라는 생각만이…. 앞으로 결코 하고 싶지 않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고마운 건 그 신부님은 며칠 동안 내 휴대폰의 문서 기능을 살리느라 여기저기 백방으로 전화하고 검색하고 마침내 안 되는 걸 되게 해 주었습니다. 잔소리 할 때에는 밉다가도, 내 일을 자기 일처럼 해결해 줄 때는 어찌나 고마운지!

나의 실수에 바가지를 긁으면서도, 내 부족함을 헌신적으로 메꿔주는 형제의 모습에서 ‘형제애가 진정 나의 배우자’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지만,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좋은 형제애는 그 자체로 좋은 배우자임을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