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큰 가방은 잠겨있고, 끈으로 묶여있어 언제든 출발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디로 가느냐고요? 저도 모르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땅의 어디든지, 강이든 바다든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플로리앙 드망즈 신부, 1899년 부활 후 첫 주일에 부모님께 보낸 편지 중.
1911년부터 초대 대구대목구장으로서 27년간 대구대목구(현 대구대교구) 기초를 닦은 플로리앙 드망즈 주교(1875~1938). 대구가톨릭대학교 영남교회사연구소(소장 김태형 신부)와 한국가톨릭신학학회(학회장 곽종식 신부)는 드망즈 주교가 이 땅에서 선교 사제로 활동하면서 프랑스에 있는 부모님께 보낸 편지 모음을 번역한 「초대 대구대목구장 플로리앙 드망즈 주교 서한집1」(이하 서한집)을 최근 출간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서한집은 당시 갓 사제품을 받은 드망즈 신부가 1898년 8월 1일 프랑스 파리를 출발해 우리나라(당시 대한제국)로 향할 때부터, 서울 예수성심신학교 교수로 재임하던 1906년 당시까지의 편지 내용을 담고 있다. 편지는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숭고한 선교 정신을 나타내는 부분까지, 드망즈 주교의 인간적인 모습과 함께 당시 외국인이 바라보던 우리나라 사회와 교회 상황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역사 자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온돌 문화에 대해 ‘이 방바닥은 언제나 따뜻합니다. 천재적인 발명입니다’(1899년 1월 8일 편지)라고 설명하는 내용, 첫 소임지였던 부산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면서 ‘사람들을 회개시키기에는 너무나 부당한 저를 임명하신 하느님께, 이 넓은 구역을 위하여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1899년 5월 2일 편지)라고 덧붙이는 내용 등이 흥미롭다. 또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전쟁과, 1905년 을사조약으로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등 역사의 격동기에 사제로서 겪었던 크고 작은 일과 그에 따른 감정도 고스란히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