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조각공원 만드는 한진섭 조각가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1-01-05 수정일 2021-01-05 발행일 2021-01-10 제 3227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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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돌에 불어넣은 온기, 누구나 와서 느껴보길”
한 명 작품으로만 이뤄진 공원,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조성
‘중노동’이지만 돌 조각이 좋아 하루종일 돌 작업에 매달려
전국 성당에도 여러 작품 제작

차가운 돌에 따뜻함을 불어넣는 조각가 한진섭은 “더 많은 분들이 제 작품을 봐 주시면 좋겠다”고 말한다.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모두 제 작품을 볼 수 있잖아요~”

오는 5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조각공원 조성을 앞둔 한진섭(요셉·64) 조각가는 “제 작품이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게 좋다”고 밝혔다. 차가운 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 그의 작품은 실제로 가까이 가서 만져 볼 수 있고 그 옆에 앉거나 올라탈 수 있으며,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수원교구 성남 분당성마태오본당의 성가정상.

한진섭 조각공원은 서울 둔촌동 일자산근린공원 안 허브천문공원에 만들어진다. 주민들이 평소 즐겨 찾는 자연공원에 그의 작품 50여 점을 설치한다. 서울 강동구청은 ‘일상에 녹아든 예술’이라는 모토 아래 허브천문공원 안에 다양한 조각품을 설치해 허브와 조각이 어우러진 명소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또 그의 실제 작업장 분위기와 함께 작업 과정 동영상도 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조각가 한 명의 작품으로 만든 공원은 노르웨이 오슬로의 비겔란트 파크가 유명하다. 조각가 구스타프 비겔란트가 평생 조각한 작품 200점을 모아 놓은 곳으로,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다. 한진섭 조각공원이 완성되면 국내에서 조각가 한 명의 작품으로만 조성된 조각공원 1호로 기록된다. 한 작가는 “주변 자연과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구상하고 있다”며 “예술가로서, 조각가로서 제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국내 정상급 돌 조각가인 그는 홍익대학교 미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술교사로 근무하던 중 작업에 몰두하고 싶은 마음에 사표를 내고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이후 1985년 카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 조소과를 졸업하고 1990년 귀국했다.

“세상의 중심이 조각이라고 생각하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이탈리아에서는 대가들의 삶을 보면서 작가 정신을 배웠어요. 한국 미술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죠. 많은 장인들이 모여 있는 그곳에서 오히려 한국적이면서 ‘한진섭스러운 것’을 찾게 됐습니다.”

작품 ‘떴다 떴다 비행기’.

지난 45년간 조각 작업을 해 온 그는 돌 조각은 ‘중노동’이고 오랜 작업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게 제가 좋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한 작가는 편도 50분 거리 작업실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한다. 아침에 나와 저녁 8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간다. 야외 작업장이지만 한여름, 한겨울에도 예외는 없다.

“작업장에서 노는 거죠. 작품도 구상하고 돌도 깨고 톱질하고 망치질도 하고 그래요. 손길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들이죠. 저는 돌 작업이 참 재밌어요. 만들 수 있는 형태도 많고 아이디어도 아직 많습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용인 삼성국제경영연구소 조각상 ‘세계를 향하여’부터 서울 크라운해태 본사의 ‘해태’상,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정의의 가족’상 등이 있다.

전국 성당에도 그의 작품들이 많다. 원주교구 평창 대화성당부터 수원교구 성남 분당성마태오성당과 서울대교구 논현2동성당, 홍제동성당, 대전교구 천안쌍용동성당 등에 그가 깎아 만든 제단과 독서대가 있다. 특히 2009년 작업한 분당성마태오성당 성가정상은 신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요셉 성인이 가족을 지켜 주는 형상으로 행복한 성가정 모습을 표현했다.

그는 교회미술 작품 중 1997년 강원도 평창에 있는 작은 성당인 대화성당 작업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첫 교회미술 작업이었다. 원래는 대화성당 제대와 성수대만 만들기로 했는데, IMF 사태로 다른 작업들이 중단되거나 취소돼 훨씬 다양한 성미술 작업을 하게 됐다. 십자고상을 비롯해 독서대와 성모자상, 14처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한 작가는 “하느님이 연결해 주신 것 같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교회미술에 대해 “이제는 좋은 작가의 작품을 교회에도 놓을 수 있는 시기가 됐다”며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격려해 주는 교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서양 작품을 단순히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성당에 가보니 아름답고 거룩한 분위기에서 기도할 수 있다는 그런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말예요. 더 많은 분들이 교회미술을 포함한 미술작품을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아마 문화적으로도 여유로워지고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