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예쁜 성탄 말고 안 예쁜 성탄 / 양하영 신부

양하영 신부 (제1대리구 남양본당 주임)
입력일 2020-12-15 수정일 2020-12-18 발행일 2020-12-20 제 3224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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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이 시기만 되면, 우리는 찬란한 세상과 마주한다. 온 길거리는 휘황찬란한 빛들로 가득하고 크리스마스 캐럴들이 모든 시간과 길을 가득 채운다. 성당에서도 그 찬란함이 가득하다. 잔뜩 꾸며진 구유를 보면 너무 예쁘다. 구유 속 성모님과 요셉, 목동들도 얼마나 깔끔하고 예쁜가. 예수님도 어쩜 그리 하얗고 예쁜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이 이렇게 예뻤을까?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모습은 어땠을까? 문득 떠오른 이 질문에 예수님의 탄생을 바라보게 된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이시기에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의 탄생 장면은 화려하지도 예쁘지도 않다. 새하얀 예수님은 그 어디에도 없다. 허름하고 동물들의 오물과 짚더미들, 온갖 도구들이 뒤엉켜 있는 바닥. 밝은 빛 하나 없이 그저 달빛 한 줄기뿐인 마구간 짚더미 위에서 산통을 겪고 계신 성모님. 온몸의 실핏줄이 터지고, 고통으로 인해 이가 부러질 만큼의 산고 속 성모님. 고요한 한 줄기 달빛 가운데 외마디 비명이 울려 퍼지는 마구간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신다.

그렇게 세상에 나오신 예수님의 모습은 어떤가. 아주 작은 아기의 얼굴에는 온갖 주름으로 가득하고, 두상은 예쁘게 둥근 것이 아니라 작은 틈을 나오느라 다 찌그러져 있다. 아기의 온몸에는 양수와 피, 지푸라기가 뒤엉겨 피부색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다. 눈도 뜨지 못한 채 뭐가 그리도 좋은지, 가느다란 팔과 다리를 아등바등 저으며 큰 소리로 첫울음을 터뜨리는 아기 예수님을 본다.

하나도 안 예쁘다. 솔직히 지저분하기까지 하다. 예전에 어머니께 나는 어땠는지 여쭤봤을 때, 피와 양수가 범벅인 몸과 찌그러진 머리며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고 하셨다. 직전까지 겪으셨던 엄청난 산고 역시 언제 있었냐는 듯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감격스러움과 사랑스러움에 행복하셨다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아기의 부모가 아니라서 그런 것인지, 부모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어서 그런지 그 마음을 완전히 알 수가 없다. 그저 어린 마음에 갓 태어난 아기 예수님이 예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세상에 막 나온 아기 예수님이 예쁘지 않아도 가슴 속에 가득 차오르는 것은 대견함과 고마움이다. 성당 구유에 모셔진, 성당 조명에 빛이 반짝이는 하얗고 예쁜 예수님을 바라볼 때보다 볼품없는 예수님이 더 대견하고 고맙다. 지저분한 몸에 찌그러진 머리, 잔뜩 주름진 얼굴은 조그만 아기가 우리에게 오려고 보여준 사투의 흔적이 아닌가. 오랜 사투를 벌이며 우리 품에 와주신 아기 예수님을 보며, 앞으로 우리 때문에 고생 많이 하실 텐데 볼품없고 나약한 이 시간만큼은 내가 그분을 지켜드릴 수 있길, 힘이 되어드릴 수 있길 기도해본다.

양하영 신부 (제1대리구 남양본당 주임)